100년을 기다린 법

김 부 겸 국회의원

시민일보

| 2005-05-08 22:24:04

‘과거사법’의 정식 명칭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안’입니다. 저는 원내수석부대표로서 이 법안의 합의 처리를 위해 그동안 협상 실무를 맡았고 어제 통과되었습니다.

제가 잠시 엉뚱한 소리를 하겠습니다.

프랑스 얘기입니다. 프랑스 정치는 꼬아비타씨옹이라고 하는 좌우동거(左右同居)로 유명합니다. 즉, 좌파나 우파 중 어느 하나가 압도적으로 우세하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좌우가 균형을 이루고 있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좌·우파 정치인들이 모두 국민들로부터 기본적인 도덕적 인정 위에 서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2차대전 종전 직후 4공화국입니다. 이때는 내각제였는데 제1당이 공산당입니다. 공산당이 가장 치열하게 레지스땅스 즉, 대독항전에 앞장섰기 때문에 그 공을 국민들에게 인정받은 것이겠지요. 그 4공화국 하에서 히틀러에 부역했던 비쉬정권과 친독(?)파들에 대해 철저한 색출과 단죄가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각제여서 정권 교체가 워낙 잦았던 데다 알제리 문제까지 겹쳐서 혼란을 겪다 못해 대통령제 개헌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드골을 추대하다시피 5공화국 대통령으로 선출합니다. 드골이 누구입니까? 보수 우파에 엘리트주의자이지만 2차대전의 최고 영웅 아닙니까?

이렇게 좌파든 우파든 프랑스 공화국을 지키기 위해 헌신했기 때문에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거지요. 반면에 나치즘이나 파시즘에 협력하거나 그런 입장에 동조했던 세력들은 도덕적으로 파탄 선고를 받고 완전히 몰락했습니다.


그런 바탕 위에 프랑스 민주주의가 서있기 때문에 좌파 미테랑 대통령이 우파 쉬락 총리를, 쉬락 대통령이 좌파 죠스팽 총리를 옆에 둘 수 있었고, 좌파와 우파 간에는 최소한의 신뢰관계가 가능했다고 저는 보는 겁니다.

이번 과거사법에 ‘진실과 화해를 위한’이라는 술어가 붙어 있습니다. 왜 붙어있을까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과거의 진실’을 밝힘으로써 `오늘의 화해’를 가져오려는 겁니다. 허위와 조작의 역사를 바로 잡음으로써 민족을 배신한 채 일신의 영달을 도모했던 자들, 국가 폭력을 앞세워 국민을 탄압하고 권력을 부렸던 세력에 대한 도덕적 단죄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 사회도 진정한 화해가 가능해지고 우리 정치도 상호 신뢰가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너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입니다. 일제 강점기를 1905년 을사조약 이후로 보면 근 100년을 기다린 법입니다. 반민특위 이후 한 번도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던 일이 마침내 이루어진 법입니다.

지금 당장은 야당에 대한 한 두 가지 양보 때문에 저도 안타깝지만 길게 보면 이 법으로 말미암아 가려지고 위장되었던 진실이 이제 여지없이 어둠 속에서 밝은 세상으로 걸어 나올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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