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 메모를 읽고

국회의원 박 진

시민일보

| 2005-05-10 21:34:56

{ILINK:1} 선거가 끝나고 요즘 뉴라이트 운동가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다는 파월 메모(Powell Memorandum)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파월 메모는 1971년 미국 버지니아 주 리치몬드의 지방검사였던 루이스 파월 2세가 전미상공회의소 교육위원장이었던 유진 시드노어 2세에게 보낸 정책 건의서로서, 미국사회 전체가 좌편향하는 것을 막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제시한 글입니다.
유명한 정치지도자도 아니고 정치 석학도 아닌 일개 지방검사의 생각을 담은 이 메모는 전미상공회의소를 비롯한 경제단체 소속 주요 기업의 임원들에게 일제히 배포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그 결과 보수의 혁신과 각성이 이루어졌고 헤리티지 재단, 케이토 연구소와 같은 우파 싱크탱크가 탄생하는 등 경제계를 중심으로 반기업정서와 좌파운동에 대항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시작됩니다. 한 지방검사의 메모 하나가 결과적으로 미국 사회의 방향을 바꾸게 된 것이죠.

파월은 1971년 미국의 시장경제체제가 광범한 공격을 받고 있다는 문제의식으로부터 메모를 시작합니다. 이어 그러한 공격의 근원은 신좌파들이며, 공격의 수단은 대학 캠퍼스에서의 강연과 미디어를 이용한 홍보 등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공격에 의해 미국 사회, 특히 젊은층에게 반기업 정서가 광범위하게 퍼져 사회 전체가 좌편향되고 있다는 진단을 내립니다.

파월은 미국 사회의 좌편향은 기업인들과 정치인들에게도 많은 책임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기업인들은 무관심과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정치인들은 반기업 정서에 편승해 부자와 빈자, 기업과 근로자를 대결시키는 가장 천박하고 위험한 정치를 하고 있다는 거지요. 한마디로 기성 보수 세력의 무기력, 무전략, 무책임을 질타한 것입니다.

파월은 진보주의 공세를 막기 위해 대안을 제시합니다. 우선 전미상공회의소의 적극적 역할을 촉구합니다. 평판도 좋고 지지기반도 넓은 전미상공회의소가 보다 전략적으로 진보주의자들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학계가 ‘개방성’과 ‘공정성’, ‘균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그 방안으로 교과서 내용 평가를 통한 교육균형 회복, 대학 강의시간의 평등한 분배, 교수진의 균형 잡기 등을 제안합니다.

한편으론 TV 방송 모니터를 통해 불균형 방송을 바로잡고, 시사 토론 프로그램에 보수 논객이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결론적으로 파월은 좀 더 공격적인 태도로 미국의 시장경제체제를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미국과 우리는 정치문화가 다릅니다. 사회적인 정서도 다릅니다. 1970년대와 2000년대 사이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남북으로 갈려 이념 문제가 바로 정치·사회적인 갈등을 초래할 수 있는 민감성을 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파월 메모에 주목한 이유는 미국의 1970년대 보수 진영이 그러했듯, 2000년대 한국의 보수가 위기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보수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공세적인 전략으로 위기를 벗어났지만, 한국의 보수는 아직까지 위기 탈출의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수의 위기를 치열하게 극복한 미국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냉전 이후 유일 강대국의 위치를 확고히 굳히고 있지만, 보수의 위기에 빠진 한국은 과거의 덫에 걸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상황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나라당에 필요한 것 역시 철저한 자기개혁으로 과거를 청산하고, 공세적 전략으로 패배주의를 극복하는 것입니다. 사회의 변화를 시대의 흐름이라며 방치하거나 기회주의적으로 편승하지 말고 우리가 옳다고 믿는 원칙과 소신을 바탕으로 당당하게 국민을 설득해 나가야 합니다. 앉아서 소극적으로 기다리지 말고 가슴을 열고 직접 국민들을 찾아가 새로운 희망과 내일의 비전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번 국회에서 통과된 행정도시법은 정략적인 수도분할법임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이에 편승하고 동조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나라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고 국민에게 엄청난 부담을 줄 뿐이기 때문입니다.
국가경제의 효율성 저하는 물론 남북통일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죠. 한나라당이 당장 어렵고 힘들더라도 노무현 정부의 무책임한 대중영합중의(포퓰리즘)에 동조해서는 안 됩니다. 원칙과 소신을 굽히지 말고 꾸준히 국민의 편에서 노력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만개하고 자유와 인권이 그 어떤 가치보다 우선하는 사회, 기회의 균등과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는 사회, 소외된 약자에게 관용과 혜택을 베풀 수 있는 사회, 글로벌 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글로벌 인재들을 키워주는 사회, 우물 안을 벗어나 세계라는 넓은 바다 속으로 뛰어드는 진취적인 도전정신이 인정받는 사회·이러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한나라당은 낡은 보수를 혁명하는 결연한 심정으로 철저한 자기혁신과 도덕성 회복, 공세적 이슈 선점, 그리고 보수의 풀뿌리 조직화를 주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흔들리는 나라의 중심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지금과 같은 혼란과 도전의 시대에 한나라당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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