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변인의 입은 싸움닭 주둥이

고하승 편집국장

시민일보

| 2005-05-15 21:45:09

{ILINK:1} 각 정당 대변인들의 입이 싸움닭 주둥이처럼 갈수록 태산이다.

언론이 정권에 대한 감시·비판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던 군사독재 시절, 대변인의 논평 한마디는 그야말로 막힌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청량제 역할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수많은 정치인들이 대변인직을 통해 입신했으니, 그 역할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는 재삼 거론하지 않아도 알만한 일이다.

그러나 폭로·비방전에 익숙한 정치문화는 결국 대변인의 입을 오염시키기고 말았다. 이로 인해 한 때 정당의 ‘입’인 대변인제가 존폐의 기로에 선 일이 있었다.
먼저 열린우리당과 분당 이전의 민주당 ‘당 발전·쇄신특위’는 대변인을 폐지하는 대신 당의장 산하 공보실장이 홍보기능을 담당하고 언론브리핑은 해당 부서나 위원회 책임자가 담당토록 하는 내용의 안을 마련, 당무회의에 넘긴 일이 있다.

당시 한나라당 ‘당·정치개혁특위’도 대변인제를 폐지하고 공보실을 두는 쪽으로 대변인제 개선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했었다. 모처럼 정치권이 대변인제 폐지와 관련, `의기투합’하는 분위기를 보였었다는 말이다.
물론 대변인이 정쟁을 촉발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이 같은 논의가 흐지부지되는가 싶더니, 오히려 입이 거칠기로 유명한(?) 싸움닭 같은 사람들만 골라 대변인에 임명하는 풍토가 조성되고 말았다. 우선 열린우리당의 서영교 부대변인은 14일 서울역 앞에 세워진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 홍보탑에 ‘경축’ 문구가 쓰여 있는 것과 관련, 논평을 통해 “서울시의 광주항쟁 ‘경축’은 이명박 서울시장의 5.18 영정 앞 파안대소와 함께 서울시장과 그 수하들의 천박한 역사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는 게 서울시의 주장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25주년 기념홍보탑의 ‘경축’이라는 단어는 ‘5.18 민중항쟁 25주년 서울기념행사위원회’와 서울지방보훈청의 요청에 의하여 씌어졌다는 것이다. 전화 한통화면 쉽게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일을 괜스레 긁어 부스럼만 만든 격이다. 어쩌면 싸움닭으로 길들여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은 이보다 한 수 위다. 그는 여당이 청계천 재개발 비리 진상규명위원장에 병풍사건의 김대업씨를 변호했던 최재천 의원을 내정하자 “병풍의 썩은 물이 청계천을 오염 시킬까 염려 된다”는 다분히 감정 섞인 대변인 논평을 내놓았다.

단순히 변호사가 피의자를 변호를 한 것만 가지고 마치 ‘병풍(兵風)’ 공작을 주도한 것처럼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아무래도 지나치다. 오죽하면 최 의원이 전 대변인을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고발까지 했겠는가.

정말 이대로는 안된다. 지금처럼 ‘아니면 말고’식의 싸움닭 같은 논평이 춤을 추는 한 정치 불신은 결코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정적에게도 깍듯하게 “잘 되기를 바란다”고 예의를 갖췄던 한나라당 박 진 의원의 대변인 시절, 그 품위 있는 논평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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