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과 과공비례

국회의원 고진화

시민일보

| 2005-05-16 21:09:07

{ILINK:1} 논어 선진편(先進篇)에서 공자는 제자 장자에게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過猶不及)”고 하였다. 또한 제자 재여에게 “지나치게 공손하면 도리어 예(禮)에 어긋난다(過恭非禮)”고 야단친 적이 있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모자란 것만 못하며 예가 지나치면 예의가 아니라는 것이 공자의 가르침인 것이다.

스승의 날을 2주일 앞둔 지난 5월3일, 고려대학교는 긴급 처장단 회의를 소집해 보직교수들의 일괄 사퇴를 결의했다.

이건희 회장 박사학위 수여식에서의 책임논란은 당사자들이 규명해야 할 일이긴 하지만 이를 바라본 대다수의 국민들은 사건의 책임규명보다 사건에 대한 대응 그 자체로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보직교수 전원 사퇴결정은 이를 지켜본 국민들에게 ‘과연 보직교수 전원이 그토록 갑자기 사퇴할 만한 일이었는가?’라는 의문점을 던져주었다.

인터넷 언론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60.31%가 고려대학교의 보직교수 사퇴결정이 ‘과잉대응’이었다고 응답하였다. 보직교수 전원사퇴라는 결정은 곧 대학 전체 행정업무의 정지를 의미한다.

학교 행정을 마비시킬만한 중대한 사안이 아니면 결정할 수 없는 조치이다. 이번 일이 학교 업무를 중지시켜도 될 정도의 사안이 아니라는 것은 여론조사에서 입증이 된 셈이다.

올해 초 ‘친일보다 좌파가 더 위험하다, 일본의 강점은 한국의 축복이다’ 등 망언을 서슴없이 쏟아낸 한승조 전 명예교수에 대해서는 언론에 공표된 지 10여일이 지나서야 사표를 수리하였다. 이번 사건과 사뭇 다른 대응이다.

대학교는 1차적으로 학문의 전당에서 학생들을 사리에 맞게 가르치고 학생들을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교수진, 학생, 교직원들 간의 충분한 논의와 의견교환을 통해 학교의 외적 성장과 동시에 질적인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공자님께서 제자들에게 강조한 과유불급(過猶不及)과 과공비례(過恭非禮)를 먼저 생각하여야 한다.

대다수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진지하고 책임 있는 스승의 모습인 것이다.

마태복음 3장에서 예수는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며 자신의 선행을 통해서 자신이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으려고 하는 바리새인들의 행위를 경고하면서 ‘선행은 선행 그 자체로 임하라’는 교훈을 남겼다.

이번 고려대 사건은 최근 몇 년간 별다른 원칙 없이 진행되어온 대기업에 의한 대학 기부문화가 한계점을 맞이하였으며 이와 더불어 대학기부의 변혁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주장이 수면 위로 급부상하게 된 것이다.

‘고려대학교 100주년 기념관 건립을 위해 400억원을 지원하였기 때문에 대기업 회장에게 100주년 행사를 앞두고 박사학위를 주어야 한다’는 논리가 기부행위의 공식이 될 수 없음을 상아탑과 대기업이 깨달아야 한다.

물론 학교의 발전을 위해 외부의 지원과 협조는 필수적이다.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제공한다면 그것은 분명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대학발전을 위한 기부와 협조는 21세기 경쟁사회에서 필수적이다. 그러나 대기업이 기부를 빌미로 상아탑을 홍보의 도구로 전락시켰다면 이것은 불행한 일이다.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할 정도의 잔잔한 감동을 일으키는 기부문화, 과연 불가능한 일일까?

올해 스승의 날은 부처님 오신 날과 같은 날로써 그 의미를 더욱 깊게 생각하게 한다.

석가는 그의 제자들이 수행 중 어려움에 봉착하거나 수행이 그릇된 길로 나아갈 때 항상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가르쳤다. “처음의 마음이 나올 때 곧 바른 깨우침을 이룬다(初發心時便正覺)”는 가르침을 내린 것이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초심이라는 말은 불경의 경장에서 나오는 말로써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의 교육계가 진리탐구와 인재 양성이라는 학교교육의 초심을 지켰다면 이번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업과 대학교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석가는 왕문경(王問經)에서 “공덕이란 목이 마른 다음에 우물을 파거나 저수지를 만들 듯 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부터 쌓은 노력에 의해 이룩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기업은 기부를 통해 생색내기에 급급해서는 안된다. 경제활동을 통해 얻은 부를 사회에 환원하여 인재육성에 앞장서야 한다.

이러한 인재들이 기업의 국제경쟁력의 원천이 되는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학교기부문화를 되돌아보아야 할 시점에 처해 있다. 고대사태가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대학교에서는 진리와 학문의 발전을 위해 학교의 성장과 발전에 대한 구성원간의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대학교육의 목표와 이를 성취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구성원들의 진지한 고민을 통한 합의가 절실한 것이다.

기업체는 기부를 홍보와 생색내기를 위한 도구가 아닌, 부의 사회적 환원을 이루는 윤리경영, 사회책임경영의 모범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인재육성을 통해 기업과 사회의 경쟁력을 제고하여야 한다. 올바른 기부문화의 정착을 통해 우리의 대학교육 발전은 물론 경제계를 포괄한 국가 전체의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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