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발은 학생들의 자존심

이주호 (국회의원)

시민일보

| 2005-05-22 21:55:10

{ILINK:1} 최근 학생들의 ‘촛불집회’가 있었다.
우려하였던 만큼 대규모도 아니었고, 폭력사고도 없었던 것으로 보도되어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인터넷상 두발규제 관련 사이트를 들어가 보라.
우리 학생들의 두발 규제에 대한 높은 원성과 냉소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학생의 옷이나 신발에 대한 규제보다 훨씬 더 민감한 것이 ‘두발관리’이다.
두발은 우리 신체의 일부이자 자존심과 직결되어 있다.
80년대 후반, 여성들이 앞머리에 무스를 발라 높이 세우는 스타일이 유행했었는데 일명 ‘자존심 머리’라고 불렀었다.

사춘기를 거치며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에게 신체와 관련된 자존심은 어른의 몇 배를 능가할 수 있는 것이다.
왜 학생들이 학교의 지나친 두발 규제와 강제 단속에 반발하는 것인지를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청소년 폭력 문제에 대한 대책을 고민하면서, 아이들이 했다고 보기에 믿어지지 않는 흉포성이나 자살까지 이르게 하는 집요한 폭력에 충격을 받았지만, 더욱 더 놀라운 일은 그러한 행위들을 아무 ‘죄책감’ 없이 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왜냐고 물었을 때 ‘어른들도 그러잖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올 때 정말 난감하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학생의 입장에서 학교폭력이 발생하는 근본원인을 따지고 들어가면 ‘억눌린 마음’과 ‘인정받고 싶은 욕구’ 등을 발견한다고 한다.

이러한 욕구와 억눌림을 과도하지 않은 수준의 머리스타일로 표현 했다고 치자.
이때 학생의 의견이 충분히 수렴되지 않은 ‘학생생활규정’에 따라서 강압적으로 단속한다면 순간 아이들의 심리 속에는 ‘폭력적’인 반발감이 생기지 않을까?
두발의 강제단속역시 학교폭력 문제만큼이나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우리의 조사에 의하면, 이미 2000년도에도 교육부는 서울시 교육청의 최근 공문과 흡사한 공문을 보냈었다.
5년 이상 수십 차례 인권침해적인 두발 강제단속을 하지 말라고 학교에 권고했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래서 전국 교육청에 자료를 요구하여 보았더니, 놀랍게도, 교육부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2005년도 약 다섯 달 기간 동안(겨울, 봄방학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3달의 짧은 기간이다) 전국 중ㆍ고등학교 중 76개 학교, 서울에서만 21개 학교가 기계나 가위로 강제 두발지도를 했다는 자료를 받았다.
교육청을 통해 받은 자료니 아마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심할 가능성도 있다.

또한, 우리가 받은 자료에 의하면 전국 대부분의 초등학교는 두발을 규제하지 않는 반면(전국 27개교만 두발 규제), 반대로 중ㆍ고생들의 경우 전국 대부분의 중·고등학교가 두발을 규제한다.

두발을 규제하는 학교가 4685개교인데 비하여 자율화한 학교는 334개에 불과하다.
물론 요즘 고등학생들은 성인과 구별하기 어려워 유흥업소 출입 등을 적발하기 위하여 두발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규제의 필요성이 침해하는 자율성에 비해 너무 빈약하다.
예컨대 학교 내에서 핸드폰 규제와 두발규제는 차원이 다르다.
핸드폰은 예의를 갖추지 않으면 자칫 남에게 피해를 준다.
두발규제는 단지 2차적인 일탈을 방지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인 것이다.
따라서 합리적 방안은 ‘스스로 납득하고 수용하는 규제’일 것이다.
학생들에게 남용되지 않을 정도의 자율을 부여하고 이에 대해 스스로 준수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토론해서 합리적인 대안을 이끌어내고 이를 규율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막스 베버는 ‘합리적(합법적) 권위’를 강조하였다.
이는 사회통념에 비춰 타당하고 (헌)법의 이념에 합치되는 내용을 올바른 절차를 거쳐 규율함으로써 스스로 승복할 수 있는 권위라 할 수 있다.
즉, 학생 두발에 대한 규제도 스스로 승복할 수 있고 납득할만한 권위를 통해서 규율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였을 때 학생들 스스로 보다 더 단정한 머리를 선호하고 스스로 두발규제에 동의하고 이를 준수함으로써 두발에 대한 자존심을 세울 수도 있는 것이다.
학교는 선생님에 의해 지식을 전달받을 뿐 아니라, 다양한 지도를 통해 전인교육을 받는 곳이다.

이러한 전인교육은 그 내용도 중요하지만 행하는 방법과 과정도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의 학교에서 이러한 전인교육의 과정에 학생-교사-학부모가 적극적으로 참여토록 해 보다 바람직하고 효과적인 결과를 얻어가는 과정이 진정한 학교자치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기계나 가위로 강제 두발지도를 하는 관행은 지금 당장 철폐하고 지금부터 두발에 대한 학교구성원의 컨센서스를 형성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멀리 보았을 때, 이러한 과정이 학교자치를 실현하고 토론문화를 활성화함으로써 전인교육을 실현하는데도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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