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작가와 일본의 윤리

이 명 원 (문화평론가)

시민일보

| 2005-06-01 20:10:49

{ILINK:1}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힘’이 강조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 현대의 특성은 ‘무한경쟁’이라는 말로 곧잘 표현한다. 경쟁은 불가피한 것일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다음과 같은 조건이 있어야만 하겠다. 경쟁에 참여하는 모든 행위자가 기꺼이 동의할 수 있는 ‘공정한 규칙’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축구와 야구는 모두 스포츠로 불린다. 만일 어느 넋 빠진 사람이 있어, 이 종목이 다른 스포츠의 구성원들에게 축구경기를 해보라고 말한다면, 모든 사람이 비웃을 것이다.

왜? 경기의 규칙이 다른데, 야구선수는 어쩌란 말이냐는 반문이 당연히 예상된다. 이처럼 게임에는 ‘공정한 규칙’이 필요한 것이다.

공정한 규칙이 정당성을 만든다. 아무리 힘이 강조되고 무한경쟁이 예찬되는 시대라고 할지라도, 근거가 되는 규칙이 신뢰할 수 없는 것이라면 정당성을 찾기는 힘들다. 특히 이 정당성이 강조되는 분야가 정치다. 정치적 지도력에 ‘힘’이 실리려면 그에 걸맞는 정당성이 있어야 하며, 그럴 때 국민적 동의가 가능한 것이다. 여러 국가가 경쟁하는 국제정치의 장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세상이 ‘힘’에 의해 움직인다고 할지라도, 정당성을 상실한 힘센 권력은 신뢰의 대상이 아니다. 최근 일본 정치인들의 궤변에 가까운 발언을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자주한다.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는 주변국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신사참배를 강행하겠다고 신경질적으로 말하고 있다.

아시아 역내 국가와의 갈등조차 조율하지 못하면서, 그런 일본 정부가 유엔 상임이사국에 되겠다고 나서는 것은 분명 아이러니다.

이시하라 도쿄 도지사는 틈날 때마다 망언을 일삼고 있다. ‘북한 위협론’을 들먹거리면서 북한을 선제 공격해야 한다고 하는가 하면,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3류 정치인이라 비난하는 망언을 해 빈축을 산 바 있다. 일본의 외무상인 야치 차관의 발언은 주제넘은 내정간섭의 성격을 띠고 있다. 도대체 선린관계에 있는 인접국에 대한 존중의 태도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일본의 정치인과 관료들을 지켜보면서, 나는 ‘일본의 윤리’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국가 윤리라는 것도 있는 걸까?

나는 있다고 본다.
윤리라고 하는 것이 개인간의 관계에 한정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공동체에도 윤리는 분명 존재한다.

한 공동체의 건강성과 정당성의 척도는, 해당 공동체가 견지하는 윤리적 태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윤리’에 대한 논의 역시 가능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나는 위에서 언급한 일본의 정치가와 관료들에게 한 사람의 일본 소설가를 소개하고 싶다. ‘나쯔메 소세키’를 아시는지. 이른바 일본의 ‘국민작가’로 불리는 사람이다. 나는 위에서 언급한 일본의 정치가와 관료들도 이 사람의 소설을 한두 권 정도는 읽어보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른바 일본의 ‘국민작가’ 아닌가. 이 작가의 작품 중에 ‘마음’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소설의 화자는 도쿄대에 재학 중인 ‘나’로 설정되어 있는데, 역시 도쿄대를 나왔지만 아무런 사회활동을 하지 않고 자기 집에만 칩거하고 있는 ‘선생님’의 자살을 중심문제로 설정한 작품이다.

왜 ‘선생님’은 사회생활을 포기하고 급기야 자살했을까.
이 의문을 풀어 가는 과정이 이 소설의 절정을 이룬다. 선생님의 ‘유서’의 내용을 요약하면 핵심은 이렇다. “친구에 대한 사죄와 책임, 스스로에 대한 윤리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윤리라니? ‘선생님’의 아내는 절친했던 그의 친구가 짝사랑했던 여자였다.

그런데 젊은 날의 선생님이 그런 친구의 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여자를 자신의 아내로 취했다. 그것을 안 친구는 이에 절망해 자살했다. 그런 상처 때문에 소설 속의 선생님은 사회생활을 포기했고, 인생의 전 시간을 친구에 대한 사죄의 태도로 살았다. 물론 그것이 꼭 자살로 귀결했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은 남지만, 이조차도 친구에 대한 사죄와 책임, 그리고 윤리적 반성의 소설적 장치라는 점에서, 나는 서늘한 느낌으로 소설을 읽었던 것이다.

그런 소설 속 ‘선생님’의 엄격한 윤리적 태도와 오늘날 일본의 대표적인 정치인들이 뿜어내는 ‘말의 화살’ 사이에는 아득한 ‘심연’이 있다. 나는 오늘의 일본 정치인과 관료들에게 그들의 ‘국민작가’인 나쯔메의 소설을 다시 읽어볼 것을 진정으로 권유한다. ‘일본의 윤리’란 게 있어야 한다면, 나는 나쯔메의 소설 ‘마음’에 등장하는 ‘선생님’의 자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국의 보통사람이다.

이런 말을 던지고 나서, 나는 갑자기 우울해졌다. 우리에게도 ‘한국의 윤리’를 추궁하는 그런 ‘국민작가’가 있는가 하는, 매우 서늘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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