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와 추태로 얼룩진 ‘풀뿌리’
고하승 편집국장
시민일보
| 2005-06-20 19:20:50
{ILINK:1} ‘횡령, 성추행, 난투극, 관광성 외유….’
소위 지역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장과 이들을 견제하고 감시·감독해야 할 지방의회 의원들의 비리와 추태는 이처럼 일일이 열거하기도 벅찰 만큼 심각한 상황이다.
실제로 어느 지역에서는 단체장 들이 시장·군수협의회라는 것을 만들어 자치단체예산으로 부당하게 1억5000만원의 기금을 조성한 뒤 임기가 끝나면서 1억3000만원의 잔액을 각자 수천만원씩 나눠 가졌다가 들통 났는가 하면, 경기도는 단체장 31명 가운데 범죄혐의가 인정돼 시장의 직무가 정지된 곳만 시흥·안산·광주·오산시장 등 4명이나 된다.
또한 지난해 인천에서는 시의회와 구의회에서 의원들 간의 난투극이 무려 5번이나 발생했다고 한다.
심지어 서울 중구에서는 모 구의원이 여성공무원을 성추행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지방의원의 관광성 외유는 언론과 시민단체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실제 지난 2002년 민·관·군이 태풍 피해 복구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 경기도의원 전원이 9000여만원의 예산을 들여 추석 직후 해외여행을 계획해 도민들의 반발을 산 일이 있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의 과도한 축제성·선심성 행사,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개발사업, 기금 및 공단의 무분별한 설립 등 지자체의 전횡적인 업무처리는 그 정도가 매우 심하다.
따라서 주민소환제를 도입해 선출직 공직자가 위법·부당한 행위나 직권 남용·직무 유기를 했을 경우 주민투표를 통해 임기 만료 전이라도 공직을 박탈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방의회에서 ‘공직자 소환 조례’를 제정해도 지자체가 상위법인 지방자치법에 위배된다며 조례안 무효 확인 청구소송을 제기하면 곧바로 무효 처리되고 만다.
불행하게도 현행법은 대법원 확정판결 전까지 단체장 등이 자기 직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지자체와 지방의회의 전횡을 견제할 수 있는 게 감사원의 감사다.
그런데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가 20일 “현재 진행 중인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는 감사권의 남용이자 지방자치권의 침해”라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죽어도(?) 감사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몇몇 단체장들이 감사원의 감사를 이처럼 두려워하는 이유는, 필경 뭔가 뒤가 구린 구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죽하면 공무원노조가 이들 단체장들의 행태를 향해 “겉으로는 투명하고 깨끗한 열린행정을 외치지만 속으로는 인기영합적 선심행정과 무분별한 개발사업 추진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만을 강화시키려는 속셈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나섰겠는가.
비리와 추태로 얼룩진 풀뿌리 민주주의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감사원의 감사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주민소환제가 도입되면 감사원의 감사는 없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는 어림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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