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원 보호와 고해성사
고 하 승 편집국장
시민일보
| 2005-07-10 20:56:53
{ILINK:1} 기자에게 있어서 취재원보호의 의무는 천주교 신부가 고해성사를 비밀로 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미국에서 중앙정보국(CIA) 요원 발레리 플레임의 신분을 누설한 ‘리크게이트(Leak Gate)’ 사건과 관련, 끝내 취재원 공개를 거부한 ‘뉴욕타임즈’의 주디스 밀러(Judith Miller) 기자가 지난 6일(현지시각) 법원으로부터 법정구속 명령을 받았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린다. 같은 혐의로 기소됐던 시사주간지 타임 매튜 쿠퍼(Matthew Cooper) 기자가 법정에서 익명취재원에 대해 증언한 뒤 풀려난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밀러 기자는 “나는 자유 언론을 수호하기 위해 투옥을 거부하지 않겠다”고 기꺼이 감옥행을 선택한 이유를 당당하게 밝혔다.
그러나 쿠퍼는 “사회를 비판하는 소명을 가진 기관 스스로 법을 어겨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취재원 공개이유를 애써 설명했다.
물론 그의 주장처럼 언론이라고 해서 법위에 존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쿠퍼의 말은 자기변명치고는 너무나 치졸하다.
만약 누군가가 핵심정보를 제보했는데 그 제보자의 신원이 보호되지 않는다면 아무도 제보를 하지 않을 것이다. 제보 다음날 자신의 신원이 밝혀져 직장과 자유를 잃을 수도 있다는 위험을 안고도 기자에게 말을 해줄 취재원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핵심적인 정보를 가진 사람들이 익명으로 기자에게 제보를 했을 때는 그들이 보호받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쿠퍼 기자는 그 확신을 무너뜨린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쿠퍼 기자는 어쩌면 영원히 제보를 받지 못하는 ‘껍데기 기자’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반면, 대법원에서 익명취재원에 대해 증언하기보다 차라리 감옥행을 선택한 주디스 밀러 기자는 석방 후 밀려드는 제보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유능한 기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시민일보 어느 기자에게 대법원의 이런 명령이 떨어졌다고 해도 필자는 그 기자를 만나 ‘주디스 밀러’기자처럼 감옥행을 권유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신부가 고해성사를 영원히 비밀로 해야 하는 종교적 의무를 지니는 것처럼, 기자는 취재원보호라는 직업적 의무를 지니고 있다.
고해성사의 비밀을 털어놓지 않는다고 신부를 구속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취재원을 밝히지 않는다고 해서 기자를 구속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 대법원이 직업 고유의 권리를 행사한 기자에게 이처럼 유례없는 처벌을 결정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밀러 기자가 감옥행을 결심하면서까지 지키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겠는가.
단순히 취재원의 신분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밀러의 말처럼 바로 언론의 자유이며 국민의 알 권리가 아니겠는가.
언론자유를 지키기 위해 이처럼 험난한 여정을 선택한 밀러 기자에게 필자는 같은 언론인으로서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바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