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개혁의 당당한 이유

고하승 편집국장

시민일보

| 2005-07-20 19:54:21

{ILINK:1} 죽산 조봉암은 북한의 공작금을 받았다는 간첩혐의로 사법부로부터 유죄판결을 받고 사형을 당했다.

하지만 지금 죽산이 간첩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죽산은 해방직후 박헌영 노선을 비판하면서 공산주의 계열 인사들과는 철저하게 거리를 뒀었다. 따라서 북한으로부터 돈이 그에게 지급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사실 당시 죽산에 적용했던 간첩죄는 죽산과 같이 기소됐던 HID(대북공작기관) 공작원 출신 양명산(본명은 양이섭)씨의 증언이 유일한 증거였다고 한다.

오죽하면 1심 재판장이었던 유병진씨가 당시 한 신문과의 대담에서 “조봉암이 간첩이라고 인정할 수 없는 이유는 양명산이 조봉암에게 주었다는 돈을 아무리 살펴봐도 이북에서 보낸 것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고 털어놨겠는가.

실제로 58년 6월17일에 있었던 1심판결에서 재판부는 죽산에게 당원명부 유출에 대해서만 유죄(국보법위반 혐의)로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하고, 나머지 피고인들은 석방했었다.

그러나 2심과 3심 재판부는 유일한 증거인 양씨의 증언번복에도 불구하고 간첩혐의를 인정, 죽산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말았다.

당시 사법부가 모자란 사람들만 모여 있는 곳이 아니라면, 정말 죽산을 간첩이라고 믿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뻔한 것 아닌가. 그런데 사법부의 양심을 팔아먹는 이런 짓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 받았었다. 그가 내란음모를 꾸미지 않았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라도 알만한 일이다. 그런데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사법부는 그에게 거리낌 없이 사형을 선고한 것이다.

또 민청학련의 배후세력으로 몰려 8명이 한꺼번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이른바 ‘인혁당 사건’은 또 어떠한가.

뿐만 아니라 남북협상과 남북간의 경제·서신 교류 실시 및 남북 학생회담 개최, 중립화 통일·민족자주통일의 추진 등 당시의 혁신계가 내세우고 있던 주장을 적극 지지하는 논조를 폈던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은 북한과 연루되었다는 죄목으로 언론인 사상 처음으로 사형에 처해지고 말았다.

하지만 실제로 조 사장이 북한과 연루됐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법부만 그렇게 믿었다면, 미련한 집단이다. 사법부가 미련한 집단이 아니라면 역시 양심을 판 판결을 내린것이다.

그들은 단지 양심을 팔았을 뿐인지 모르지만, 그 대상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김대중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모두 생명을 잃고 말았다. 한 사람을 죽인 살인자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반성하는데, 무수히 많은 무고한 인명을 합법적으로 살상한 사법부는 이에 대해 사과 한마디 없었다.

이것이 사법부가 가장 비양심적인 집단으로 지적되는 이유인 동시에 사법부의 개혁을 요구하는 당당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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