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구미 가짜 유골 파문
최재천 국회의원
시민일보
| 2005-07-24 20:00:19
{ILINK:1} “일본만은 6자회담 재개에 기여한 것이 없다(북한 외무성 대변인)”
“메구미의 ‘유골’이라며 북한이 보내온 유골이 다른 사람의 것이라는 의혹도 (재개되는 6자회담에서) 북한 측에 따지겠다, 북한 측이 아무리 듣고 싶지 않더라도 말하겠다(호소다 일본 관방장관)”
문제는 ‘메구미 사건’이다. 지난 1월24일 조선중앙통신은 ‘일본은 반공화국 모략극을 조작한 책임에서’라는 제목의 외무성 비망록을 발표했다.
“일본정부 대표단은 2004년 11월12일 고려호텔에서 요꼬다 메구미의 남편을 만나 여러 장의 가족사진을 놓고 대상확인을 하는 방법으로 몰래 그의 지문과 피지를 채취하였다.
일본측 단장은 2004년 11월14일 요꼬다 메구미의 남편과 다시 만나기에 앞서 액체로 된 점착약을 손에 바르고 그와 악수하면서 상대방의 손에 부착된 세포를 채집하였다.
이렇게 채집한 세포를 일본의 경찰청관계자가 고려호텔에서 넘겨받아 귀국 후 과학경찰연구소에서 세포감정을 하게 하고 그 결과를 데이꾜 대학에 넘겨 요꼬다 메구미의 딸의 DNA와 대조감정을 하게 하였다 … 우리는 일본정부 대표단이 외교관례에서 찾아볼 수 없는 치졸하고 음모적인 방법으로 요꼬다 메구미의 남편의 지문, 피지, 세포 등을 채집한 데 대해 처음부터 모르는 바 아니였지만 그것이 사실을 확증하는 데로 이어지리라고 보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
이것은 메구미 유골에 대한 감정의 기초자료로 활용하려는 일본의 시도를 지적한 것이다.
논란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다시 시작됐다. 세계적인 과학잡지 ‘네이처’의 2월2일자 온라인 판은 감정에 참여했던 테이쿄 대학 강사 요시이 토미오와의 인터뷰를 통해, 실험결과는 “확정적이 아니며, 샘플이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했음을 보도한 것이다.
감정담당자가 자신들의 감정결과가 틀렸을 수도 있다고 시인해버린 것이다(참고로 지난 3월25일 일본의 교도 통신은, 요시이 강사가 ‘유골이 가짜’라고 감정한 실적을 인정받아 경시청 산하 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과장으로 특채되었다고 보도했다).
얼마 후 ‘타임’(아시아판 4월4일자)도 “연구팀에서 사용한 DNA분석기법인 유전자중합효소법(nested PCR)에 의문점이 있다”고 했다. 이 사건을 집중 취재한 ‘연합뉴스’ 조계창 기자의 기사에 따르면, 국내 전문가인 이정빈 교수(서울대 의대), 박기원 실장(국립과학수사연구소 유전자 연구실장), 이승환 실장(대검찰청 유전자 분석실장) 등도 일관되게 화장으로 가루가 된 유골을 가지고 DNA감정에 성공한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주변 상황이 북한 측에게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더 나아가 네이처 지는 3월17일자 사설을 통해 “일본 정치인들은 정치를 위해 과학을 희생시키지 말라, 아무리 그것이 불편한 사실일지라도 일본의 정치인들은 과학적 불확실성을 직시해야만 한다”고 일갈했다.
유골의 진위여부에 대한 판단은 미루고 있으나 유골파문이 북일 간의 주요한 논쟁거리가 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북한은 일관되게 재감정을 요구한다. 세 번, 네 번 이라도 재감정을 하자는 것이며 영국이나 프랑스 학자 등을 포함하는 제3국의 감정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도 같은 입장이다.
메구미 가짜 유골 파문은 일본의 우경화와 반북정서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었다. 일본정부 당국은 감정결과가 확실하다며 북측의 재감정 요구를 일축하는 한편 UN인권위에 납북자 조기 귀국 등을 요구하는 ‘대북 인권결의안’을 제출(4월11일)하는 등 강경자세를 고수하고 있다.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의 성명(2월14일)을 통해, “(메구미 유골문제를 따지기 전에) 과거 식민지 군사강점 통치기간에 840만 여명의 조선인 강제연행 등 특대형 인권유린 범죄를 저지른 데 대하여 철저히 사죄 보상” 할 것을 촉구했다.
일본은 주권국가로서 당연히 자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네이처지의 사설대로 과학적 진실을 밝히려는 작업을 우선해야 한다. 정말로 그 유골이 가짜라면, 북한 측에 돌려준 다음 진짜 유골을 달라고 요구해야 할 것이며, 감정결과에 조금이라도 의문이 남아 있다면 감정, 재감정, 제3국 감정 등을 통해 과학적 진실을 확인할 일이다.
6자회담의 의제가 특정된 것은 아니지만 6자회담의 본질은 북핵문제 해결에 있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북핵문제보다도 자국민 보호문제가 우선일 수 있으나 일본인 납치문제로 6자회담의 의제나 형식이 왜곡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런 일련의 흐름과 논리에서 볼 때 최근 6자회담 재개에서 일본이 ‘왕따’되고 있다는 몇몇 보도는 일정부분 수긍이 가는 일이다.
진정한 의미의 동북아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라면 일본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 참여해야 하고, 더 근본적으로는 2002년 북일 공동선언의 실천을 통해 지난 세기를 반성하고 새로운 동북아 평화번영 질서를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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