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파일’과‘초원복집’사건

고하승편집국장

시민일보

| 2005-07-25 20:33:32

{ILINK:1} 이른바 ‘X파일’ 후폭풍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25일 각각 ‘X파일’의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런데 그 본질을 바라보는 양당의 시각은 너무나 다르다.
열린우리당은 삼성에서 한나라당으로 불법 정치자금이 전달됐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한나라당은 ‘도청 내용’이 아닌 ‘불법 도청’이라는 절차상의 문제에 중점을 두고 있다. 즉 현 정부에서도 도청을 하는지 그 진상을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논하기 전에 먼저 지난 1992년 대선 직전에 터진 이른바 ‘부산 초원 복집’ 도청 사건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유력 인사들의 사적인 대화가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국가정보기관에 의해 불법 도청됐다는 점과, 대화 내용이 외부에 자세하게 공개됐다는 점 등 ‘X파일’과 ‘초원복집’의 사건이 너무나 닮은꼴이기 때문이다.

부산 초원 복집 사건은 14대 대통령선거를 앞둔 1992년 12월11일 아침 초원 복집에 김기춘 전법무부장관, 김영환 부산시장, 박일룡 부산경찰청장, 이규삼 안기부부산지부장, 김대균 기무사지대장, 우명수 교육감, 정경식 지검장 등이 모여 지역감정 자극 등을 통한 김영삼 후보 몰표 유도 방안을 ‘모의’한 것을 당시 국민당 정주영 후보 측에서 도청해 폭로한 사건이었다.

이후 정 후보측과 언론에 의해 대화내용이 폭로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확대됐다.
그런데 이 사건은 당시 참석자에 대한 문책은 얼렁뚱땅 넘어가 버렸고, 대신 도청과정에 대한 문제 제기로 국민당 간부 2명과 안기부 직원에게 ‘주거침입죄’가 적용돼 벌금 90만원을 최종 선고받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실제로 당시 참석자들 가운데 김기춘 법무부 장관이 대통령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것이 전부다. 이들은 오히려 김영삼 정권하에서 승승장구했다.

당연히 지역감정과 관권을 동원한 불법 선거 행태가 문제가 돼야 했지만, 당시 조·중·동을 비롯한 족벌언론은 노골적으로 김영삼 후보를 편들며 이 문제를 덮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불법도청을 문제 삼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X파일’과 관련, 그 같은 사태가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으니 참으로 걱정이다.
이 사건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삼성에서 한나라당으로 불법 정치자금이 전달됐다는 사실이며 한나라당이 ‘차떼기’의 원조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물론 국가 권력기관이 불법 도·감청을 한 것이 명백하게 드러난 만큼 이에 대한 진상규명도 필요하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라도 그로 인해 사건의 본말이 전도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모쪼록 참여연대가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안기부가 도청한 대화내용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겠다고 밝힌 만큼, 검찰의 철저한 수사로 진상규명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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