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6자회담을 지켜보며

김근식 경남대 정치언론학부 교수

시민일보

| 2005-08-01 19:19:10

{ILINK:1} 일단은 시작이 나쁘지 않다. 오랫 동안 회담이 안 열린 것은 분명 부정적 현상이었지만 회담재개를 합의하는 과정에서 북한과 미국 양측이 보여준 직접 대화는 그 어느 때보다 양자 신뢰를 기대케 하는 대목이다. 특히 지난 7월9일에 있었던 힐 차관보와 김계관 부상의 회담재개를 결정하는 직접 접촉은 전례가 없던 일이다. 이외에도 이른바 중대한 제안으로 압축되는 한국 정부의 적극적 역할 역시 평양과 워싱턴을 오가며 북미간 의견접근을 가능케 하는 좋은 조건이 되었던 게 분명하다.

회담 시작 이후 과정도 아직은 우려보다는 기대를 할 만하다. 개막식 이전에 보였던 북미를 포함한 활발한 양자접촉, 서로가 우려했던 회담의 장애를 꺼내 들지 않았던 개막식 인사말, 이견을 보이면서도 적극적 협상의지를 포기하지 않은 기조연설, 그리고 북미간의 이견해소 노력 등은 내용과 형식면에서 이번 회담이 실질적 합의를 도출할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회담에 임하는 각국 입장 역시 고집 끝에 평행선 보다는 가능한 합의를 최대한 이끌어 낸다는 자세이다. 한국은 북핵문제에 초점을 집중해서 원칙적이지만 최소한의 합의점을 찾아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핵폐기의 전략적 결단도 하겠다는 생각이다. 미국은 북이 전략적 결단을 내린다면 안전보장과 에너지 지원이 가능하다는 유연한 태도다. 중국과 러시아는 예전처럼 북미간 주고받기식 협상을 선호하고 요구하는 데 변함이 없고 일본이 납치자 등 인권문제를 의제화하고 있지만 이번 회담에서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왕따 분위기이다. 결국 양자접촉 중시의 회담방식과 북미 양측의 보다 완화된 태도는 일단 협상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는 게 분명하다.

물론 장애물은 아직도 잠복해 있고 쟁점은 여전히 미해결로 남아 있다. 무엇보다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를 북핵폐기 이외 확대된 개념으로 고집하거나 핵군축 회담 주장을 재확인한다면 회담은 간단히 결렬될 것이다. 북핵폐기의 한반도 비핵화가 아니라 남한의 핵철폐와 주한미군의 핵불사용까지를 포함하는 이른바 ‘조선반도 비핵화’를 회담의 목표로 주장한다면 이번 회담에서 합의는 불가능해진다. 결국 남은 일은 기조연설에서 언급된 수준의 비핵지대화를 북한이 더 이상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즉 북이 자신의 논리적 일관성을 위해 비핵화 혹은 비핵지대화를 포괄적 개념으로 주장은 하되, 일단 북핵폐기에 집중해서 논의를 진행해야만 결렬을 피해갈 수 있다.

미국도 조심해야 할 일이 있다. 2차 회담 때까지 집착했던 CVID를 고집하거나 HEU를 회담 의제로 다시 꺼낸다면 북미간 협상은 매우 힘들어진다. 동결 대 보상의 내용을 상호 조율하는 대신 북의 선핵폐기만을 일방적으로 고집한다면 이 역시 회담은 어렵게 될 게 뻔하다. 기조연설에서 내비친 인권문제가 이번 회담의 주 의제가 되어서도 곤란하다. 일단 말이라도 북이 핵폐기 의사를 천명하면 미국도 말이라도 대북 안전보장과 관계정상화를 약속해야 한다. 그리고 핵폐기 이전에라도 북이 원하는 것을 일부 줄 수 있다는 유연함을 보여야 한다. 핵폐기 완료 이후 미국이 변심하면 어떡할 것이냐는 북의 대미불신은 미국도 일정하게 풀어줄 필요가 있다. 신뢰는 상대가 있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협상이 가능하다.

이번 회담이 평화적 해결 국면과 제재 국면의 위험한 갈림길이 될 것임은 북미 모두 잘 알고 있다. 어떻게든 돌파구를 열어보려는 한국의 적극적 역할이 빛을 보려면 북한과 미국이 이견만을 확인할 게 아니라 공통점을 찾아 최소한의 접점마련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북이 한반도 비핵화에 포함되는 북핵폐기를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미국은 핵폐기의 댓가로 북미관계 정상화를 북한에 공개적으로 약속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른바 말 대 말로 북미 양측의 상호 최종목표를 확인하고 합의해 낸다면 일단 북핵문제는 대화를 통한 해결 프로세스에 진입하게 된다.

상대방이 원하는 최종목표를 수용한 이상 양측의 요구사항을 투명하게 이행하는 과정은 실무적이고 기술적인 차원에서 얼마든지 타협 가능할 수 있다. 최근 북한의 정세는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나서 남북관계와 핵문제를 챙긴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런 탓에 복원된 남북관계는 오히려 남한이 놀랄 정도로 북이 적극성을 띠고 있다. 핵문제 역시 김 위원장의 결심으로 회담복귀와 유연한 태도가 보여지고 있다.

이제 경제회생과 인민생활 향상을 위해 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진전은 김 위원장에게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리고 6.17 면담으로 남북관계 돌파구가 극적으로 마련되듯이 핵문제 역시 김 위원장 특유의 방식으로 전격적으로 풀릴 가능성이 있다. 미국 고위 인사의 평양방문이라면 김 위원장의 체면치레도 되고 핵문제를 정치적으로 결단할 수 있는 그림판이 될 만하다. 이번 회담은 문구에 매달린 합의도 중요하지만 북미간 신뢰형성과 상호 정치적 결단을 가능케 하는 논의 차원에서도 충분히 의미를 찾아야 한다. 어렵게 돌아온 길 이제 힘찬 시작이 중요하다. 난산 끝에 옥동자를 바라는 심정으로 이번 4차 회담이 의미 있는 합의를 도출하기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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