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개혁세력에게 드리는 호소

이광철국회의원

시민일보

| 2005-08-02 18:56:34

{ILINK:1} 지난 7월28일부터 러시아에 와서 ‘유라시아대장정’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유라시아대장정은 광복 6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의 하나로서 그 옛날 광활한 대륙을 내달리던 우리 선조들의 웅혼한 기상을 느껴보고, 한·러 교류협력을 증진함으로써 대륙진출의 활로를 모색한다는 의미로 진행되고 있는 행사입니다.

모스크바에서 출발하는 서시베리아 코스와 부산에서 출발하는 동시베리아 코스, 두개의 팀으로 나뉘어서 각각 시베리아를 횡단하고 바이칼 호수에서 만나는 일정인데, 저는 동시베리아팀의 일원으로서 현재 러시아의 베르고르스크 지역을 지나고 있습니다.

당초에는 ‘러시아에서 보내는 편지’라는 형식으로 국내의 동지들께 시베리아 횡단의 감회를 전해 드릴 계획이었습니다만, 공교롭게도 제가 러시아로 출국하기 직전인 지난 28일 오전에 대통령께서 ‘당원동지들께 드리는 글’을 통해서 ‘대연정’을 제안하셨고 국내에서 이와 관련한 논쟁이 한창이기에 이에 대한 제 입장을 밝히는 내용으로 첫 번째 편지를 씁니다.

우선 저는 선거제도의 개혁을 전제로 한나라당에 정권을 내어 줄 수도 있다는 대통령의 제안을 한나라당의 혼란과 분열을 야기하려는 정략적인 술수로 보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물론 현재로서는 한나라당이 이 제안을 선뜻 받아들일 가능성이 거의 없는 듯 하지만, ‘받겠다고만 하면 정말 줄 수 있다’는 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진심이라고 봅니다.

지금까지의 정치적 행보에 비추어 보면 그는 버릴 것은 버리고 줄 것은 줌으로써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성취하여 왔습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현실에 대해 과감함으로써 미래를 성취하여온 정치인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고민에 맞닥뜨린 것입니다.

선거제도의 개혁을 통한 지역구도의 혁파가 필요한 줄은 알겠는데, 과연 ‘반민주세력’에게 권력을 내어 주면서까지 추진해야 할만큼 지상과제인가?

저는 그렇다고 봅니다. 87년의 민주항쟁 이후로 사회 전 분야에 걸쳐서 절차적 민주주의의 진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정치영역만이 1990년 3당 합당 시절에 머물고 있으며, 이것이 우리 사회의 보다 근본적인 개혁과 진보를 가로막고 있다는 대통령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오늘날 우리 정치를 주도하고 있는 거대정당들이 과연 정책과 이념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적 결사체들인지 솔직하게 자문해보아야 합니다. 한나라당의 경우를 보면 유신시절과 5, 6공 군사정권의 부역자들에서부터 노동운동가 출신까지가 같은 정당 안에서 ‘부적절한 공생관계’를 맺고 있으며, 열린우리당의 경우에도 이념과 행태에 있어서 다양한 스팩트럼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정치질서를 가능하게 하는 환경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가장 주요한 것은 바로 고질적인 지역주의입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민주적인 정치발전을 억압하여온 개발독재의 망령과 극우반공 이데올로기는 이제 수명을 다하여 사멸해가고 있지만, 망국적인 지역주의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고문과 공작정치의 책임자도, 한 평생을 권력의 양지를 좇아 기회주의자로 살아온 사람도,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의 깃발을 들고 나오기만 하면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환경에서 정당과 정치인이 정책과 노선으로써 경쟁하고 국민에게 심판 받는 정치풍토를 기대하는 것은 말 그대로 ‘진흙탕에서 연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저 역시도 안타깝고 속이 상합니다. 참여정부의 탄생이 노무현이라는 개인의 성취가 아닌 민주개혁세력이 피땀을 모아 이룩한 ‘공동의 성취’일진대, 그 소중한 권력을 양보하지 않고서도 정치개혁을 추진할 수 있다면 더 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대통령의 문제제기의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절차와 방식을 못마땅하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문제제기의 시점이 부적절하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대통령이 편지에 사용한 자구(字句)가 거칠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물론 정치권 전반의 의견을 먼저 들어보고, 조금 더 완곡한 어법을 사용하고, 때를 보아가며 더 치밀하게 공론화를 시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가질 만합니다.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대의) 못지 않게 어떻게 하는가(방식)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앞뒤가 바뀌어서는 안 됩니다. 방식이 지금까지의 관행에 맞지 않거나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대의에 동의하고 힘을 합치는 것을 망설여서는 안됩니다.

어쩌면 이곳 러시아는 좌절의 땅이기도 합니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줄곧 우리 인류가 품어왔던 꿈,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를 철폐하겠다’던 그 이상(理想)이 74년 동안의 실험 끝에 결국 실패로 막을 내린 비운의 나라입니다. 저는 오늘 이상이 무너진 이 쓸쓸한 땅에서 새로운 꿈을 꾸어 봅니다. 지역으로 갈라서서 소모적인 대립을 되풀이하지 않고 가치를 중심으로 모여서 선의의 정책경쟁을 벌이는 정치, 국민의 복지를 증진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며 통일과 동북아시대에 대비하는 정치는 당연한 상식이면서도 아직 우리에게는 이루어야 할 꿈입니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최근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