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고개드는 개헌론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손혁재
시민일보
| 2005-09-12 20:02:48
{ILINK:1} 개헌 논의가 또다시 공공연하게 불거지고 있다. 우리 정치사는 헌법의 제정과 개정이 정치의 중심 주제로 작용했다. 그래서 개헌 문제는 잠복해 있다가 계기만 주어지면 주요한 정치현안으로 대두하곤 했는데 이번에도 노무현 대통령이 ‘연정론’을 제기한 뒤 또다시 개헌 논의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개헌은 물론이고 개헌 논의조차도 많은 정치적 파장을 남겼다. 나라의 뼈대를 이루는 대표규범인 헌법의 변경은 가능한한 억제하며,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개헌이 국민의 뜻과는 관계없이 주로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무리하게 이뤄졌다. 또 개헌 논의의 중점이 정부형태 등 권력구조의 개편에 놓여졌고 국민의 기본권이라든가 다른 부분들은 거의 무시되어 왔다. 개헌 논의를 바라보는 국민의 눈길이 곱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대두되었던 개헌 논의는 ‘5년 단임제’를 ‘정·부통령(또는 대통령) 4년 중임제’로 바꾸고,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며, ‘분산 대통령제’를 도입하자는 것 등이었다.
대통령 5년 단임제는 87년 6월 항쟁으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살아나는 과정에서 채택되었다. 단임제는 민주화의 상징으로 장기집권의 폐단을 막는다는 의미가 있었다. 5·16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박정희는 3선 개헌으로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다. 부정선거와 지역감정 자극을 통해 겨우 3선에 성공한 박정희는 10월 유신을 일으켜 국민의 대통령 선출권을 박탈했다. 이른바 ‘체육관 선거’로 영구집권을 꾀했다. ‘긴급조치’로 상징되는 폭압적 통치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정권은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막지 못했다. 마침내 부마항쟁에 이은 10·26으로 유신체제는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나 전두환 중심의 신군부가 12·12와 5·17을 거치면서 정권을 다시 탈취했다. 총칼로 정권을 세운 신군부는 유신체제의 통일주체국민회의를 선거인단으로 형태만 바꾼 간선을 유지하면서 7년 단임제를 내세워 국민을 달랬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은 내내 정통성 시비에 시달렸고, ‘대통령을 직접 내 손으로 뽑자’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 주장이 국민의 공감대를 얻었다. 이에 대응해 집권 민정당은 내각제를 주장했으나 87년 6월 항쟁으로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가 채택됐다.
국민의 정부에 들어와 내각제 개헌을 둘러싸고 공동여당인 국민회의와 자민련 사이에, 그리고 여야 사이에 지리한 논란이 이어지던 중 중임제 개헌 문제가 등장했다. 중임제 개헌 주장의 명분은 타당성이 있다. 단임제는 임기 중 국민의 신임을 묻기 어렵다. 5년의 임기도 짧고 임기말 현상이 너무 일찍 찾아와 소신 있는 국정운용이 어렵다. 4년마다 치러지는 국회의원과 임기가 맞지 않아 정치권과 행정부가 불협화음을 내게 된다. 잦은 국회 파행이 바로 이 때문이다. 또 정·부통령제는 우리 정치의 고질병인 지역주의 정치의 치료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단임제는 장기집권을 막는다는 의미가 있었지만 7년 임기를 5년으로 줄인 것은 당시 권력을 둘러싼 여야의 이해관계가 맞아 졸속적으로 합의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1노3김(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이 누구도 승리의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낙선되더라도 쉽게 재도전할 수 있도록 타협했다는 것이다.
결선투표제는 어느 후보도 과반수를 얻지 못했을 때 1, 2위 득표자를 대상으로 재투표를 하는 것으로 프랑스 등에서 채택하고 있다. 직선제 도입 이후 줄곧 지지율 3~40%대의 대통령이 탄생하면서 어려움을 겪자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개헌논의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개헌 문제가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제기되고 논의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현 제도가 문제가 있지만 개헌을 반드시 해야 할 정도의 본질적인 문제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다수가 어떤 제도를 원하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해결에 적합한 제도가 어느 것인가 하는 점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부형태만 논의할 것이 아니라 현행 헌법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사회, 경제, 문화, 복지, 기본권, 영토문제 등 다뤄야 할 모든 것을 다 다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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