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타결의 의미와 과제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근식
시민일보
| 2005-09-26 20:21:48
{ILINK:1} 우여곡절 끝에 북핵 협상이 일단 타결되었다.
핵문제 해결과정의 첫 타결이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마지막 타결이 아니라는 점에서 ‘일단’이라는 수식어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번 합의가 북핵 해결의 원칙적 방도와 포괄적 내용을 담은 최초의 총론적 합의 틀임을 애써 부인하거나 폄하할 필요는 전혀 없다.
오히려 이번 공동성명은 향후 각론에 대한 논의과정에서도 정치적으로 구속력 있는 이정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진전임에 분명하다.
특히 이번 북핵 합의는 북미 양국이 상호 타협과 양보에 의해 접점을 찾음으로써 신뢰 형성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이번에 북한과 미국은 상대방의 일방적 굴복만을 요구했던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 서로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얻을 것은 얻는 윈윈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보다는 적정한 선에서 절묘하게 타협했다는 점은 북미간 초보적 신뢰의 기반이 마련되었음을 의미하고 이는 곧 남은 쟁점에 대해서도 신뢰에 기반한다면 반드시 비관적이지 않다는 기대를 갖게 하는 대목이다.
우선 북한은 경수로 제공 시점의 모호성을 받아들이면서까지 핵 포기라는 전략적 결단을 수용했고 결국은 그토록 집착했던 제네바 합의의 실질적 폐기를 감수했다.
미국 역시 미래의 시점이긴 하지만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 권리를 동의하고 대북 안전보장과 관계 정상화를 약속하는 한편 대북 에너지 지원에 참여하는 양보를 보여줬다.
결과적으로 총평하면 북한은 명분을 챙기고 미국은 실리를 도모한 측면이 강하다.
여하튼 북한과 미국 모두 일정한 양보를 통해 합의도출을 가능케 하는 적극적 의지를 보인 것이다.
또한 이번 합의는 북미간 핵문제 해결의 단초를 마련했다는 점 말고도 특이하게 눈에 띄는 부분이 있는 바,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협상을 별도로 진행시킨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는 북핵문제를 핵을 개발하려는 북한과 핵개발을 저지하려는 미국 사이의 문제로만 국한시키지 않고 북핵을 넘어 한반도 평화체제의 마련이라는 보다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접근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평화체제 논의를 통해 전쟁상태를 온전히 종료하고 정전협정 대신 평화협정 체제를 정착시킨다면 이는 북미간 적대관계의 법제도적 해소와 함께 한반도 냉전구조의 해체라는 성과를 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번 합의에도 불구하고 향후 진행과정을 전망해 볼 때 남은 과제 또한 적지 않다.
항간에서는 실천 담보의 불안정성을 이유로 이번 공동성명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는 한계가 아니라 향후 풀어야 할 과제일 것이다.
제네바 합의와 비교할 때 이행 계획과 이행 방법 및 시기가 적시되지 않았음을 들어 한계를 갖고 있다는 지적은 제네바 합의가 1차 북핵위기의 최종 합의였고 이번 9.16 성명은 2차 북핵위기의 첫 합의라는 점에서 평면적으로 비교 불가능하다.
그러나 한계는 아니더라도 풀어야 할 과제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서로 주고받아야 할 내용에 대한 총론적 원칙에 합의했으므로 이번의 ‘말대 말’의 합의가 실지 행동 대 행동으로 옮겨지기 위해 각론의 합의가 또 필요하다.
즉 핵포기의 구체적 이행 방법을 비롯해서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 과정의 조건과 일정표 및 대북 에너지 지원의 규모와 절차 등 이번 합의의 거의 대부분이 각론상의 세세한 논의와 협의가 필요하다.
따라서 앞으로 진행될 실무협의와 차기 6자회담에서 각론의 합의를 도출해 내는 것도 이번 합의 도출만큼이나 큰 지혜를 필요로 한다.
또한 시퀀스 즉 순서의 문제가 남아 있다.
북측이 핵 포기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동결과 검증, 해체의 시기 및 절차와 이에 대한 미국의 대북 상응 조치가 어떻게 상호 행동조치에 따라 순서를 맞추느냐는 앞으로도 적잖은 지혜와 인내를 요구하는 이슈일 것이다.
이번 합의는 상대방에게 제공해야 할 사항을 바구니에 담아놓은 수준이므로 구체적인 실천과정에서 바구니 안의 내용물을 차례를 지워 꺼내야 하는 어려움이 남아 있는 것이다.
공동성명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북한이 외무성 대변인의 담화를 통해 경수로 제공이 선행되어야 NPT 복귀와 IAEA의 사찰을 수용할 수 있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힌 점은 향후 순서의 문제를 논의하는 데 적잖은 난관이 존재하고 있음을 역으로 입증한 사례이다.
이번 공동성명이 북핵 해결을 가능케 하는 첫 출발이라는 점에서는 희망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희망이 결실을 맺고 기회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도전도 적지 않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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