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디로 가고 술만…

국회의원 이인영

시민일보

| 2005-10-03 19:30:04

나도 가끔, 경우에 따라서는 자주, 술을 마신다. 그러니 내게도 고백할 술자리는 꽤, 자주 있었을 것이다.

양주가 힘에 겨워(독해서가 아니라 돈이 많이 들어가서) 소주폭탄주를 즐겨 마시지만, 어쨌거나 나도 폭탄주를 마신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지만 그래도 대개 가려가면서, 일삼아 마시는 것이 아니라 흥돋궈 마신다. 그런 나도, 요즘에 이르러 술자리 문화를 다시 생각한다.
사람은 어데로 가고 술만 남았는가... 이런 생각들 때문이다.
그날 밤 대구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주성영 의원의 술자리 폭언 사건에 대한 세상의 관심이 온통 여기에 몰려있다. 공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것도 국감기간에, 국회의원이 피감기관 간부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다가 일어난 일이기에 진실은 밝혀져야 하며, 관련자는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나는 오늘, 폭언과 성희롱이라는 거치른 파열음을 탓하기에 앞서,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과 귀를 어지럽히는 파열음을 내고 있는 부서진 악기에 주목한다. 흔히 빚어지는 폭언과 추태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예의를 망각한 결과물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대개 잘못된 특권의식으로부터 잉태되었다.

앞으로는 국민의 눈과 입임을 자임하면서 뒤로는 힘없는 사람위에 군림하고 횡포를 일삼는 이중성에서 비롯됐다.

그러기에 나는 오늘, 술자리 폭언을 둘러싼 진실게임의 이면에서 권력이 백성위에 군림하며 인간을 파괴했던 불행한 과거의 기억을 떠울린다. 비뚤어진 접대문화가 낳은 도덕 불감증을 목격한다.

국민을 부모와 같이 섬기고, 자식처럼 아끼며, 스승처럼 존경하고, 하늘처럼 두려워하는 것은 정치인의 기본 덕목이고 소양이다. 정치의 본성이다. 술자리 폭언사건의 본질은 정치인이 갖춰야 할 기본 덕목과 소양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인간 경시의 경박함이며, 제어되지 않은 특권의식이 막무가내로 요동치는 일그러진 영웅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일 뿐이다.

술자리 폭언사건이 진위공방으로만 인식된다면 이 부끄러운 사건은 아무런 울림도 없는 둔탁하고 거친 소음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설사 국회 윤리위원회가 주성영 의원에게 그 어떤 징계를 내린다한들 제 2의, 제 3의 부끄러운 이름들은 계속 등장할 것이고, 우리내 가난한 영혼에는 붉은 상채기만 남게 될 것이다. 언젠가 어느 기업에서 접대문화 개선을 위해 더치페이를 원칙으로 한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다 동의할 수는 없지만 정치권에서도 이런 원칙이 적용될 수 있을까? 업무상 교류를 위한 자리는 자기 부담의 원칙으로 간소하게 갖고, 폭탄주 말고도 향긋한 차 한 잔으로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골프 대신 배드민턴과 축구, 등산을 함께 하는 것...

이것이 정치권에서도 일반화되기를 바라는 것은 나만의 설익은 꿈일까?
그저 맑은 영혼의 떨림에 귀 기울여 보고 싶다. 사람이 있는 술자리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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