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나무
열린우리당 의원 우제항
시민일보
| 2005-11-10 20:14:41
{ILINK:1} K형, 오랜만에 이렇게 편지를 띄웁니다. 요즘 다들 전화다 이메일이다 메신저다 해서 편지를 써본지가 언제인지도 모르겠군요.
바로 9일이 43번째 맞는 소방의 날이라고 하기에 그동안 연락 못한 것을 이렇게라도 만회하고자 두서없이 글을 적어 봅니다.
얼마 전 책장을 정리하다가 어린 시절에 읽었던 쉘 실버스타인이 지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책을 봤습니다.
K형도 잘 알다시피 이 책에서 소년은 언제나 자신이 필요할 때만 나무를 찾았으며, 나무는 소년에게 모든 것을 주었습니다.
나무는 소년의 무료했던 어린시절에 훌륭한 놀이터를 제공했으며, 돈이 없는 소년이 장성했을 때는 열매를 내주어 팔게 하여 결혼을 도왔습니다.
소년이 장년이 되어 여행을 필요로 할 때는 자신의 몸을 내주어 배가 되었으며, 소년이 늙어 쉼터가 필요할 땐 자신의 마지막인 밑 둥까지 빌려주었습니다.
K형이 그간 걸어왔고 앞으로도 걸어가고자 하는 길도 아마 이 나무처럼 무조건적으로 베풀고 도와주는 길이 될 것 같아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합니다.
바삐 살아가는 우리네 사람들은 자신의 일이 해결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소년과 같이 소방 공무원들의 노고를 잊고 살아가기 때문이라는 것은 잘 알겠죠.
예전에 소주잔 기울이며 이야기할 때 K형은 다 이해한다고 했지만 왠지 나는 K형도 사람인지라 섭섭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소방 공무원은 국민들을 위해 자기 한 몸을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이며, 우리들은 이런 고마움을 잊고 사는 ‘소년’일 것 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K형, 하지만 나를 비롯한 우리네 이웃들이 소방 공무원들의 노고를 잠시 잊고 사는 것은 부인하지 않지만 결코 고마움을 전혀 모르는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지는 않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얼마 전, 경북 칠곡에서 두 명의 소방관이 화재현장에서 인명수색에 나서다 순직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제일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 K형이었습니다.
그래서 K형에게 안부전화라도 할까하다가 괜한 인사치레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수화기를 내려 놨었답니다.
순직한 2명의 소방관들은 술집 종업원으로부터 건물 안에는 아무도 없다는 말을 전해 듣고도 혹시나 있을지 모른 한명의 인명이라도 구해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끝까지 인명수색에 나서다 순직하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숙연해집니다.
사회를 지켜감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질서와 생명을 보호해주는 소방·경찰직에 계신 분들에게 늘 고마움을 가져야 한다는 맘을 새롭게 다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K형,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욕할지 모르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분들의 죽음이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숭고함과 고마움을 느끼게 하더군요.
외국과 굳이 비교하지 않더라도 열악한 근무환경과 처우를 개선한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턱없이 부족한 것을 느껴서인지 K형을 볼 면목이 없다는 것 혹시 눈치 채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각종 화재와 유독가스 등에 노출돼서 이러저러한 질병으로 신체적, 경제적 고통을 받는 소방 공무원들을 위한 제대로 된 전문병원도 하나 없는 것이 지금 현실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이겠죠.
2006년도 예산과 관련해 심의가 한창인 이곳 국회에서 제가 제일 관심을 가지고 있는 소방·경찰직 공무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저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노력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주5일제가 시행되던 안 되던 K형과 같은 분들에게는 다른 나라 일 같겠지만 K형과 같은 분들이 소외감 받지 않도록 다른 부분으로라도 보상이 될 수 있도록 저랑 비슷한 생각을 공유한 분들과 방안을 찾아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K형,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각지에서 불철주야 노력하시는 K형과 똑같은 분들에게도 K형에게 감사드리는 것으로 대신해야 할 것 같군요.
내일 43번째 소방의 날을 맞이하더라도 기념식만 열릴 뿐 또 다시 각자 맡은 현장에서 ‘국민안전 레이다망’을 키느라 생일 잔치국 먹을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일 하루쯤은 사건사고가 적어 조금 여유로 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K형, 아무쪼록 건강 해지치 말고 바쁘겠지만 여유생기면 그때 같이 소주잔 기울이던 고깃집에서 소주 한잔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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