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5차회담의 평가와 아쉬움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김근식 교수

시민일보

| 2005-11-20 19:22:02

{ILINK:1} 최근 개최된 5차 6자회담에서 참가국들은 의장성명을 발표하고 가능한 가장 빠른 시일에 2단계 회담을 갖기로 합의한 후 서둘러 휴회를 선언하고 말았다. 부산 APEC 정상회의에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이 참석 해야 하고 이들 5개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당연히 자국 정상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3일 동안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번 1단계 회담은 애초에 예상했던 대로 어떤 성과를 도출하기보다 각국의 의견을 제시하고 상호 탐색하는 자리였다. 9.19 공동성명의 총괄적 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구체적 행동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각국의 입장과 주장이 충분히 개진되었던 것만으로도 이번 1단계 회담은 그 나름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회담 기간 동안에는 의미 있는 양자접촉도 있었는 바, 가장 관심을 끌었던 북미간 접촉도 진행되었고 회담 마지막 날에는 6자회담 사상 처음으로 남북 대표단의 만찬회동이 있기도 했다.

또 의장성명에 명시된 대로 6개국은 공약 대 공약 원칙에 따라 공동성명을 이행하고 검증가능한 한반도 비핵화를 조기에 실현하며 한반도와 동북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것임을 재천명했다. 북한과 미국을 포함, 참가국 모두가 공동성명 이행의 필요성과 한반도 비핵화 목표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점에서 이번 의장성명은 의미를 가진다. 또한 이번 회담에서 북한이 핵포기의 일정을 5단계의 방식으로 제시했다는 점도 긍정적인 평가 대상이다. 북핵 포기를 실제 행동으로 옮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일진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단계 회담에서는 예상치 못했던 복병도 나타났다. 북한이 강력하게 제기한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9.19 공동성명 합의 이후 미국 정부는 일부 북한 기업의 자산을 동결하고 북한이 위조달러 공모 혐의와 마카오 중국계 은행의 돈세탁 의혹을 제기하면서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를 결정한 바 있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은 이들 대북 제재 조치를 대북 적대정책의 일환으로 간주하고 공동성명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미국이 대북 평화공존 약속을 저버린 것이라고 강력 비판했다. 그리고 회담 휴회와 함께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은 휴회기간 중 북미간 금융제재 해제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는 합의사항까지 밝히기도 했다.

잘 알다시피 북한이 핵문제 협상 과정에서 미국에게 가장 선결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바로 대북 적대정책의 철회이다. 올 초 지리한 북미 대결 상황에서 4차 회담이 개최되지 못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도 바로 미국이 연초에 제기한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에 대한 북한의 철회요구였다. 북한 입장에서 자신을 폭정의 전초기지로 규정하는 미국은 대북 적대정책을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고 따라서 미국과 도저히 회담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으며 결국 미국은 북한을 주권국가로 인정한다는 발언과 함께 북한에 대한 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재확인을 해주고 나서야 4차 회담이 개최될 수 있었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미루어 보면 이번 1단계 5차 회담에서도 북한은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 조치를 대북 적대정책의 부활이라는 차원에서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고 이는 9.19 공동성명에 명시된 바, ‘상호 주권 존중과 평화 공존’이라는 내용과 심각하게 배치된다는 주장인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휴회 기간 중 북미가 따로 만나 금융제재 해제 문제를 논의하기로 합의함으로써 이 문제가 6자회담을 장애하는 데까지는 나가지 않았지만 북한과 미국 사이에는 여전히 상대방에 불신이 남아 있고 특히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의 대북 발언과 조치 하나하나를 적대냐 공존이냐의 관점에서 지나칠 정도로 예민하게 보는 것이 사실이다. 이를 충분히 이해한다면 미국도 이미 9.19 공동성명을 합의했고 그에 따라 북한과 국교정상화를 논의해야 하는 만큼 회담을 앞두고 북한을 자극하는 행동은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북한과 미국이 공동성명 합의를 일단 첫 단계만이라도 상호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상대방의 언행 하나하나를 문제해결의 실천의지로 간주하고 있는 북미 양국인 만큼 이번 5차 회담에서는 북한의 경우 핵동결 실행을, 미국의 경우 테러지원국 해제 용의 혹은 경제제재 해제 등의 대북 상응조치를 가시화함으로써 이제 북핵문제가 대결이 아니라 해결의 프로세스에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 또한 이것은 북한과 미국이 상대를 불신하지 않고 믿게 만드는 중요한 첫단계 조치가 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특히 북한의 경우 핵포기라는 전략적 결단을 내린 만큼 미국과의 신경전을 벌이기에 앞서 핵포기의 실천조치에 대한 구체적 용의를 표명하고 이를 지렛대로 삼아 미국의 상응조치를 행동 대 행동의 원칙으로 요구하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이 밝힌 5단계 핵포기 일정표도 사실은 핵실험 보류와 핵이전 금지 및 추가 핵무기 생산금지는 사실상 새로운 것이라 보기에는 어렵다. 이미 하지 않고 있던 내용을 새삼스럽게 앞으로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어떻게 핵포기의 일정표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오히려 곧장 핵활동 중지를 하고 이의 검증을 거쳐 종국적으로 핵폐기를 하는 단계가 훨씬 현실적이다. 북한도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말고 곧바로 핵포기의 실제 행동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미국의 대북 상응조치를 끌어내는 게 훨씬 현명한 처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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