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변신, 전략인가 반성인가?

변희재(칼럼니스트)

시민일보

| 2006-02-14 19:41:11

{ILINK:1} 신임 보건복지부 장관 유시민의 화려한 변신이 정가의 화제가 되고 있다. 이미 청문회 때, 깊이 몸을 숙인 자세로, 총공세에 나선 한나라당 의원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던 그는, 장관 취임 이후, 보다 더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취임 후 노인복지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며, 그간의 강경 이미지를 누그러뜨리는 것은 물론, 자신에 절대 부적합 판정을 내렸던 한나라당 당사에까지 방문해, “지나고 나면, 잘 지명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로 협조를 구했다. 특히 이 자리에서 한나라당 이방호 정책위의장이 “한나라당의 박멸을 위해 이 땅에 태어났다”는 유 의원의 과거 발언을 지적하자, 수차례에 걸쳐 사과하며, “다시는 그런 발언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다짐까지 했다.
평화방송 라디오 진행자이자 민주당 장성민 전 의원은 유시민의 변신에 대해 “진정성은 없고, 정략일 뿐이다”라며 폄하했다. 특히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정동영 전 장관의 견제용으로 유시민 카드가 활용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유시민의 변신은 진정어린 반성의 결과물일 수도 있다.
정치인은 수많은 대중을 상대로, 그의 발언과 통치행위를 결정하기 때문에, 어떠한 단선적 이유 하나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시민의 파격적인 변신에 대해서는 다양한 가설로 설명해볼 수는 있겠다. 그간 유시민의 정치는 복선을 깔아두는 스타일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그의 말을 그대로 믿어도 충분할 정도로 직선적이었기 때문이다.
첫째, 일단 보건복지부 장관에 취임하기 위해 정략적으로 이미지만 바꿨을 가능성이 있다. 유 의원의 보건복지부 장관 임명에 대해서는 한나라당 뿐 아니라 민주노동당, 그리고 민주당은 물론 여당에서조차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유시민이 더 강경한 자세로 나왔다가는 그는 물론 노 대통령에까지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일단 소나기를 피한다는 자세로, 언제라도 다시 강경자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 즉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다.
둘째, 그러나 유시민의 변신을 이렇게만 해석하기에는 그가 자세를 낮춰도, 너무 낮춘다는 지적이 있다. 특히 한나라당 방문에서 앞으로 한나라당에 대해 정치적 독설을 일체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은 향후 유시민의 재변신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장관 임명될 때, 그렇게 자세를 낮추다가, 한두 달 뒤에 다시 돌변한다면, 그야말로 유시민식 정치의 진정성을 무너뜨리는 일이 된다.
고로, 유시민의 변신은 스스로 반성의 결과물일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여당의 의원들마저도 자신의 편에 서지 않은 것을 보며, 유시민은 내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벼락치기 반성은 그 자체로 문제이다. 유시민의 변신이 정략적이었든 아니면, 진정성 깃든 반성의 결과였든, 정치인의 자격으로는 둘 다 부적합한 일이다. 정략으로 보자면, 너무 수가 낮은 것이고, 반성의 결과물이라면, 대체 그간 뭐하다가, 갑자기 장관 자리를 하나 얻어, 벼락치기 반성을 하냐는 말이다.
아마도 유시민은 스스로 장관이 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을지 모른다. 반대파까지 끌어안고 가야하는 공직자는 평소부터 말을 함부로 해선 곤란하다. 반대파의 협조를 구하는데 큰 곤욕을 치러야 되기 때문이다. 그간 장관할 생각 없이, 자기 소신껏 발언하다가, 느닷없이 장관이 되니, 너무나 큰 변신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렸다. 그것이 사실상 유시민의 딜레마이다.

유시민이 언제까지 장관직에 있을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언젠가는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그때 과연 유시민은 어떠한 정치를 할 수 있을까?
변신에도 최소한의 일관성은 필요하다.
어쩌면 유시민은 이해찬 정도의 일관성도 갖추지 못한 정치인일지도 모른다. 이해찬은 총리가 되어서도 그간의 독설가의 소신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해찬은 유시민의 변신폭보다 훨씬 좁은 폭에서 자신의 논점을 찾고 있다. 물론 총리가 된 뒤, 독설을 퍼부었지, 총리를 맡기 전에는 유시민 처럼 막말을 퍼붓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해찬 총리 임명 한나라당이 크게 반발하지는 않았다. 그 점에서 이해찬이 유시민보다 훨씬 더 노련한 편이다.
그러나 유시민 보다야 낫지만, 이해찬 역시 여당의 당세가 쇄락하고, 노 대통령이 레임덕을 맞을 경우 총리 역할을 다하는데 곤욕을 치를 것이다. 노 대통령도 물론 이해찬식으로 한나라당을 대하고 있다. 개중 유시민만 방향을 전환했다면, 유시민이 가장 순진해서 그럴 수도 있고, 가장 그릇이 작아서 그럴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유시민의 변신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본 집단은 한나라당이다. 유시민에 총공격을 가해 유시민의 입을 막았다. 설사 그가 장관 퇴임 이후 다시 한나라당 공격수로 나선다 해도, 일관성 문제 때문에, 예전의 위력을 되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장관 자리 하나로, 두고두고 가시가 될 정적을 해결한 셈이다.
유시민은 다시 한번 더 반대 방향의 반성을 할 필요가 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자신의 소신을 지키면서, 장관직을 포기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는 밑거름이 아니었을까? 유시민의 유일한 정치적 자산인 대야 공격수 자리를 그까짓 장관 자리 하나와 맞바꾼 것은 그에게는 너무나 큰 손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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