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창조적 선택에 달렸다
시민일보
| 2006-02-27 19:38:51
{ILINK:1} 흔히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고 하지만 교훈을 얻기는 커녕 상처만 얻을 수도 있다. 그 어느 쪽인지는 역사의 주체들의 선택에 달려있다.
미국은 약 한세기 반 전에 내전인 4년간의 남북전쟁을 하였다. 당시 약 3500만명의 인구 가운데 60만명이 희생되었다고 하니 인구에 비례하면 엄청난 인명 희생을 치른 치열한 전쟁이었다. 북군의 초토화 작전으로 남부의 전역(戰域)은 거의 폐허로 변했다.
다양한 이민자 사회로 구성된 미국은 노예제에 대한 견해의 차이로 남북이 갈라섰지만 링컨 대통령은 처음부터 국가통합을 사수하는데 전쟁의 목적을 두었다.
그런데 그들은 전쟁으로 인한 엄청난 희생을 결코 헛되이 하지 않았다.
그 전까지 국가가 헌법적 존재로 추상적 인식에 머물렀으나 전쟁을 통하여 하나의 국가로써 현실적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정치적인 성과였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획득한 정신적 자각이었다. 그들이 무엇인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집단적 자각을 하게 되었다. 오늘의 불화 때문에 전쟁을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형성하는 전쟁으로 승화시켰다.
그들은 조상들의 건국이념인 인권, 자유, 평등에 대한 실천의지를 도전받은 것이었다. 링컨은 성찰을 통하여 그러한 전쟁의 의미를 발견하였고 단순하고 명료하며 진지한 그의 연설은 국민들에게 숭고한 사명을 전파하는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하였고 그들은 마침내 도전과 시련을 극복해 내었다.
우리도 반세기 전에 남북이 이념으로 갈라져 3년간의 내전을 치뤘다. 우리는 당시 3000만의 인구 가운데 한국군 약 14만명, 북한군 52만명, 남한 민간인 50만명, 북한 민간인 35만명 등 모두 약 150만명이 넘는 인명이 희생되었다. 그런데 뿌리도 다른 다양한 이민사회였던 미국과는 달리 우리는 단일민족, 배달겨레라고 자부하던 동족이었으며 불과 그 몇년 전까지 외세에 의해 나라를 뺏긴 설움을 함께 토했던 형제였던 것이다.
전쟁은 국토의 분단으로 끝났고 그것은 정치적 분단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한 정신적 분단을 초래한 것이었다.
한 치의 양보 없이 동족을 적으로 대하게 되었고 부모형제가, 부부가 남북으로 흩어지는 천만 이산가족이 생겼다.
처음부터 집 나간 형제를 되찾는 마음으로 적이 되어서는 안 되고 친구가 되어야한다는 통합의 정신으로 전쟁 목표를 추구한 미국과는 달리 우리는 친구도 부모형제도 적이 되는 운명을 만들었다. 물론 미국도 전후 20년간은 보복과 화해의 선택의 길에서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그러나 강경한 보복정책의 실패를 통하여 관용의 미덕이 더 많은 성과를 맺는다는 링컨이 남긴 말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우리의 경우 단일민족끼리의 처절한 내전의 상처는 오히려 이민족간의 전쟁보다 더 나쁜 관계가 되었다. 전후 상당기간동안 우리는 분단과 냉전이 초래한 적대적 대치로 자율적인 성찰의 기회도 갖지 못했다. 심지어 최근까지도 양지와 음지의 격심한 온도차를 줄이려는 사회 일각의 목소리마저도 좌파적이라고 매도할 만큼 우리는 정신적으로 미숙하다.
북한의 자유와 인권을 주장하는 것이 현재의 북한을 부정하는 구호로 들리게 한다면 역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평화와 인간 사랑의 참된 의도가 전달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한 통일의 진정한 목적을 실천하는데 아직도 냉전이 쳐 놓은 그물을 제거하고 험난한 암초를 제거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 국내의 정치현안에 대한 개입을 일절 사양해온 전직 대통령이 노구를 이끌고 북한을 방문한다는 것은 인간 사랑과 평화에 대한 그의 확고한 신념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전직 대통령의 방북은 험난한 냉전의 장애물을 제거하는데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하여 일조를 하고자하는 진정성이 담겨 있음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그것을 정치행위로 족쇄를 걸고 평가 절하한다면 우리는 역사로부터 교훈을 배우지 못하고 상처만 원망하는 부끄러운 역사의 주체로 남을 수밖에 없다.
역사는 그 이상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의 창조물이다.
비록 분단의 과거사는 돌이킬 수 없지만 분단의 현재를 극복하고 미래를 창조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때로는 우리의 힘에 벅차 통일에 대한 회의를 하기도 하고 대내외적으로 실천의지를 도전받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런 과정을 통해 통일의 공감대를 넓힐 만큼 성숙했다. 그리고 정치담당자들의 우려와는 달리 국민들은 이제 국내의 정치현안과 분리해서 평가할 수 있는 냉정함도 가지고 있다.
전직 대통령의 어려운 발걸음에 다 함께 박수를 보내야 한다. 북한문제가 대내외적으로 교착국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역할이 중요할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창조성을 발휘할 주인공이 우리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위 내용은 시민일보 2월 28일자 오피니언 5면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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