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스워드와 토비도슨
시민일보
| 2006-02-27 19:40:00
하인스워드, 그의 이름 앞에서 미국 최대 스포츠 축제인 슈퍼볼의 극적 터치다운을 기억하는 이는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그의 팔뚝에 오롯이 새겨진 한글문신을 보며 우리는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토리노 동계올림픽 모글스키 동메달리스트 토비도슨, 하얀 설원 위에서 스키 하나에 몸을 싣고 힘차게 내딛는 그의 활주를 기억하는 이는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그의 목에 걸린 동메달 뒷면과 같이 보이지 않는 입양의 슬픔을 상상하며 우리는 역시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하인스워드와 토비도슨의 극명하게 대비되는 슬픈 과거와 현재의 성공에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비단 스포츠를 통해 신체의 한계를 극복한 인간승리의 모습이 아닙니다. 분명 혼혈과 입양이라는 사회적 약자의 처지를 극복한 그들의 모습에 감동하는 것입니다.
하인스워드의 어머니는 아이가 태어난 지 두달쯤 지나자 점차 검게 변해가는 아이의 피부색을 보면서 앞으로 이 아이가 받을 놀림과 사회적 냉대를 상상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하인스워드는 영혼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어머니의 나라, 대한민국을 평생 기억하기 위해 지울 수 없는 문신으로 강렬한 의지를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모습에 감동했고, 당당하게 그의 슬픈 과거에 위로의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성취한 성공 이면에 가려진 혼혈의 허울이 그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토비도슨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입양이라는 불운한 과거의 흔적을 극복하고 훌륭하게 성장한 토비도슨에게 관심과 박수를 보내는 것은 당연합니다.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이들을 보호하는 구체적인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인들이 주목해야 할 부분입니다.
이러한 의식의 전환 속도에 맞춰 혼혈인에 대한 고용정책을 확고히 다져야 합니다. 또 안정된 사회생활을 위한 일자리 마련과 교육의 실시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억압과 차별을 분명한 범죄로 규정하는 방호벽도 쌓아두어야 합니다.
입양 문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작년 한해에만 미국 가정에 우리의 아이들이 무려 1630명이나 입양되었습니다. 단순한 수치뿐 만이 아니라 1990년대에 체결된 국제입양아보호를 위한 헤이그협약에 현재 세계적으로 68개국이 가입했지만 우리나라의 이름은 없습니다. 진지한 논의를 거쳐 우리도 국제적인 입양아보호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당면 과제입니다.
※위 내용은 시민일보 2월 28일자 오피니언 5면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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