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은 4년전과 달라야한다

손혁재 성공회대 NGO대학원 교수

시민일보

| 2006-04-11 19:07:27

{ILINK:1} 5월31일에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확정된 후보는 말할 것도 없고, 확정되지 않은 후보들도 이미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지방선거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 크지 않다. 여기저기서 잡음만 들려오고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우려만 커져갈 뿐이다.

지방자치 부활 이후 지금까지 치른 세 차례의 지방 동시 선거를 보면 몇 가지 특징이 두드러진다.

첫째, 투표율이 점점 낮아지고 있으며, 도시가 농촌보다 상대적으로 투표율이 더 낮은 도저촌고(都低村高) 현상이 나타났다.

둘째, 지역주의 투표행태로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이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두는 독점적 정당지배 현상이 나타났다.

셋째, 중앙정치의 영향이 너무 크고,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적인 성격을 띠어 왔다.

넷째, 선거과정이 단체장(특히 광역단체장)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5.31 지방선거에서도 이와 같은 양상이 그대로 되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낮은 투표율이 예상되지만 2007년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의 전초전으로 인식한 정파들의 총력전으로 혼탁양상이 나타날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5.31 지방선거가 제대로 치러지도록 하기 위해 4년 전에 치러진 6.13 지방선거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6.13 지방선거는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남겨주었다. 6.13 지방선거의 결과는 한 마디로 ‘우리 모두의 패배’였다.

그 첫 번째 패배는 유권자의 패배였다. 6.13 선거의 투표율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만들어진 1961년 이후 치러진 선거 가운데 가장 낮은 48.9%였다. 투표율이 낮으면 국민의 뜻이 선거 결과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절반의 국민 뜻이 전체 국민의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기권이 정치적 선택의 하나일 수도 있다. 정치에 대한 불신과 불만 때문에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찍어줄 만한 사람이 없다든지 기권의 사유는 많다. 또 어느 정도 그 사유는 타당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기권이 정말 아무 생각 없는 기권과 구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모두 하나로 묶어서 ‘참정권을 포기한 무책임한 유권자’로 분류될 뿐이다.

특히 당시의 월드컵 분위기에 휩쓸렸다면 그것은 반성해야 한다. 월드컵도 중요했지만 지방선거는 몇 갑절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유권자는 정치 불신으로 주권행사를 포기하면 정치가 더욱 나빠진다는 사실을 가슴깊이 새겨야 한다. 유권자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도 정치가 제대로 안되는 마당에 실망했다고 돌아서면 정치가 반성할 줄 아는가. 오히려 잘됐다고 더 제멋대로 움직여나갈 것이다.


선거가 끝난 뒤 이긴 쪽은 승리의 기쁨에 도취해 있고, 진 쪽은 패배의 충격에 허탈해할 뿐 낮은 투표율에 대해서 놀라거나 반성한 정치인이나 정당은 지금까지 전혀 없었다.

두 번째 패배는 정치인과 정당의 패배이다. 지방선거에서 지방은 실종되고 선거만 남았다. 지방정치 차원의 정책대결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중앙정치 차원의 대결이 벌어졌다.

물론 모든 선거는 선거 당시의 정치에 대한 심판 성격을 띠고 있다. 또 중앙정치와 전혀 무관한 지방정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방적 의제를 놓고 대결한 것이 아니라 여섯 달 뒤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의 전초전으로 몰고 간 것은
명백히 잘못이다.

지방 의제와 민생은 제쳐놓고 오로지 대통령 후보들의 ‘사전선거 운동’으로 일관한 무한경쟁은 지방자치를 훼손시켰다. ‘민주주의 학교’로서의 지방자치라는 고전적 의미도 빛을 잃었다.

세 번째 패배는 언론의 패배이다. 투표율이 낮은 데는 언론도 한 몫을 했다. 우선 지방선거 보도 자체의 양이 적었다. 월드컵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했다. 월드컵이 중요한 행사이기는 하지만 선거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월드컵 4강이라는 기적 같은 성적을 거두었고 많은 국민들을 한동안 기분 좋게 해주었지만, 월드컵 4강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직접 해결해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방선거는 4년 동안 우리 지방행정을 결정짓고 나아가 우리의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월드컵에 대해 보인 언론의 관심은 지나치게 뜨거웠고, 지방선거에 보인 관심은 상대적으로 차가웠다.

게다가 얼마 안 되는 지방선거 관련 보도마저도 대통령 후보들의 움직임과 발언에 초점을 맞췄고, 정작 지방선거 후보들에 대해서는 인색했다. 또 그나마 후보자의 전과사실과 관련된 선거관리위원회의 집계결과와 경쟁후보와 정당 간 비방, 금품 살포, 선거사범 급증 등 부정적인 양상이 주류였다.

물론 이런 문제들에 대해 언론이 비판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또 잘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의 극복을 위해서도 필요한 유권자들의 올바른 선택을 도울 수 있는 정보의 제공이나 건전한 선거여론의 형성에는 팔짱을 끼고 있었다.
이제 4년이 흘러 다시 지방선거를 치러야 한다.

이번 5.31 지방선거에서는 4년 전과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정당이 후보선출의 공정성을 강화해야 한다. 당내 경선의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물론이고 정당 비례대표 후보자 선출과정의 민주성을 확보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선거운동과정에서도 정책경쟁을 하도록 해야 지방자치가 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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