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와 지역문화
지금종(문화연대 사무총장)
시민일보
| 2006-05-24 17:19:57
{ILINK:1}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피습사건이 발생해 지방선거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지방선거는 유권자들 사이에 무관심과 보수화 경향이 나타나고 있어 사회발전을 염려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고 있는데 엎친데 덮친격이다.
사회진보를 이루는 일이 참으로 멀고도 험한 일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한편으로는 이럴수록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민도를 높이는 과제가 엄중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늘이 무너져도 세상은 굴러가는 법. 우울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사회운동 세력들은 선거국면에서 나름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사회운동단체들이 모여 만든 2006지방선거시민연대는 지방선거에 나선 16개 광역지자체 단체장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해 헛공약과 막개발에 해당하는 공약들을 선별해 발표했다.
이번 지방선거시민연대는 정책선거를 유도하기 위해 시민의 삶과 직결된 자치, 문화, 복지, 환경 부문에 대한 후보자들의 공약을 분석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결과적으로 볼 때 애초 우려대로 후보자들의 대부분의 공약들이 문화, 환경 등의 탈을 쓴 개발공약임이 나타나 한국사회의 막개발이 극한에 다다랐음을 보여주었다. 한편 진보적 문화예술계도 지방선거와 문화정책에 관한 토론회를 갖고 정책제안 등 적극적인 개입에 나섰다.
문화예술단체들의 정책제안의 요점을 몇 가지로 정리하면,
첫째, 각 지역에 민간 중심의 ‘지역문화예술위원회’를 구성함으로써 참여민주주의를 제고함과 동시에 문화행정의 전문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둘째, 지역문화정책에서 나타나는 많은 문제점들은 지역 내 문화시설, 인력, 프로그램 등을 네트워크하고 조정하는 기능의 부재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이를 보완할 수 있도록 ‘지역문화예술위원회’ 산하에 종합적 기능을 하는 ‘지역문화지원센터’의 설립과 운영을 주장하고 있다.
셋째, 현재 지자체 평균 문화예산 비율이 너무 작기 때문에 지자체 문화예산 비율을 전체예산 대비 5% 이상이 되도록 문화예산의 규모를 키우도록 하고 하드웨어에 지나치게 투입되지 않도록 예산 사용의 분배 원칙을 수립하는 한편, 문예진흥기금 조성 등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한 별도의 기금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필요한 문화기반시설 확보와 기존의 문화시설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문화시설의 운영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니며 각 지역의 현실에 따라 정책제안의 내용이 조금씩은 다르다. 하지만 상기한 과제들은 어느 지자체에나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항목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문화는 신성장동력으로써의 역할과 시민의 삶의 질 제고라는 특별하고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창조산업, 문화도시, 어메니티 플랜 등 문화와 관련된 열쇳말이 횡행하는 데서 이러한 흐름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적 관점으로 지역을 사고하고, 현실에 개입해 재구조화하는 실천방식은 지역의 내생적 발전을 위한 유일한 길이다. 따라서 지역문화 진흥을 위한 획기적인 제도적 장치가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지역문화발전을 위한 환경은 매우 좋지 못하다. 모든 것을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중앙이 독점하고 있는 현실이며, 지역문화발전의 주체가 될 인력은 모자라고 재원, 시설, 프로그램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이에 더해 지역문화정책을 담당하는 지방자치단체장과 문화행정은 문화마인드가 부족하거나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데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처럼 왜곡된 문화환경에도 불구하고 정책 시행자와 수혜자 모두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문화를 예술과 등가화 해서 보는 협의의 관점에 빠져있거나 장식적인 것, 혹은 경제적인 도구 정도로 치부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가 문화발전을 이룬다는 명분아래 막대한 예산을 들여 제대로 운영도 안 되는 시설을 건립하고, 일회성 문화예술 행사를 양산하며, 환경미화 수준의 도시환경 개선에 집착하는 등 말단 지엽적이며 편향적인 문화정책을 거리낌없이 펼치고 있다. 지역문화정책의 파행은 정치적 역관계와 문화적 인식 부족이라는 이중 질곡에서 비롯되며 선거를 계기로 재영토화되고 있다.
진보적 지역정치를 위해 이번 선거에 나선 후보들은 이러한 악순환을 깨고 지역을 살맛나는 곳으로 만들어 내는 일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추동력으로 삼아 시민의식을 높임으로써 우리 사회의 진보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위 글은 시민일보 5월25일자 오피니언 5면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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