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급식당번에 대한 단상

서정순(서대문구의회 의원)

시민일보

| 2006-09-25 17:17:28

“급식 당번, 할 수는 있지만 하기는 싫다”는 말이 가장 솔직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작년 조카 1학년 때, 딱 한번 해봤거든요. 올케가 직장맘이라 저희 엄마가 학교에 가시곤 했는데, 엄마가 아프셔서 제가 간다고 했지요. 학교급식당번이 어떤 건지 직접 경험해보고도 싶었고.

저희 엄마만 하더라도 “그 까짓것 뭐가 힘들다고….” 주장하시는 분입니다. 근데 저는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들더군요.

밥 푸는 것 까지는 괜찮은데, 엄마들이 밥 퍼준 후 각 반 앞 복도에 서서 밥 먹는 모습이 무척 자존심 상했습니다. 그 모습들이 엄마들의 현 위치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 같아서요.

다행히도 우리 조카반은 밥과 반찬이 모자라 밥 먹을 일이 없었지요. 밥이 남았으면 분위기 따라 저도 복도에 서서 밥을 먹었을지 모릅니다.

잔반 정리하고 나니 다른 당번 엄마가 빗자루 드니 저도 따라 걸레 들었지요. 선생님도 바라보고 계신데, 그 앞에서 청소하자니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지금 내 꼴이 뭐냐’란 생각도 들었습니다.(청소부 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선생님께서는 열심히 청소하고 있는 저희들에게 대충 하라고 하시는 것이, 서서 지켜보는 선생님의 마음도 썩 편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약간 머뭇거리시더니 엄마들이 청소만 하고 가시기보다는 아이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저와 다른 엄마들이 그 학교나 선생님에 대해 느낀 문제점을 얘기하기도 했어요.

선생님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 좋아, 다음에도 기회가 되면 할머니보다는 젊은 고모인 내가 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데 다음달 급식당번이 다가오자 학교에 가서 밥 푸고, 청소하고 싶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전 고모로서 급식당번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를 대면 그만이었습니다. 그 전처럼 저희 엄마는 별 불만없이 어린 조카를 데리고 급식 당번을 다니셨구요.

우리 아이도 내년이면 학교 들어가는데, 걱정이 되긴 했습니다. 이런 식의 강제적인 학교급식당번은 정말 하기 싫은데….

대부분의 엄마들도 저와 비슷한 심정일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급식당번을 완전 자율에 맡기면 급식 당번 신청하는 사람들 별로 없을 겁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부모들이 급식 및 청소 도우미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적어도 엄마들 복도에 서서 밥 먹는 일은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급식당번폐지에 대한 찬반이 엇갈리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보다 합리적이고 보다 인간적인 급식당번제도에 대한 고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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