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
고 하 승 편집국장
시민일보
| 2006-10-12 20:13:42
{ILINK:1} 요즘 필자의 필력이 약해졌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독자들의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굳이 해명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필자 역시 그렇게 느끼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그런 지적을 받는 것일까?
한마디로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언젠가 박성범 의원과 술자리를 한 일이 있다. 그 때 언론계의 대선배인 박 의원은 필자에게 “고 국장의 글은 간단명료해서 좋다”는 말을 했다. 군더더기 없이 ‘빙빙’돌려가며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결론이 명쾌하다는 칭찬도 따랐다.
현재 한나라당 서울시당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 진 의원도 필자의 글을 좋아한다고 했다.
박 진 의원은 최근 늦은 시각에 필자에게 전화해 ‘술 한 잔’하자고 제의했고, 당시 필자는 퇴근하고 집에 들었으나 그의 청을 거절하지 못해 기꺼이 함께 한 일이 있다. 필자의 글을 아껴주는 그가 좋기 때문이다. 그는 필자의 글을 “시원하다”고 치켜세워 주었다.
장성민 민주당 전 의원도 필자의 글을 무척 좋아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상처난 곳에 소금을 뿌릴 정도로 아픈 글’을 쓰는데 읽는 사람들은 배변의 통쾌함을 느낀다는 것.
김성호 열린우리당 전 의원도 그 못지않게 필자의 글을 칭찬했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글을 쓰려면 ‘눈치’(?)가 보인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어느 독자가 ‘왜 김덕룡 의원의 정치재개에 대해 한마디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같은 당 남경필 의원도 방송에 출연해 “김덕룡 문제없다는 건 재판부도 인정했다”고 말하면서도, 정치재개 선언시기에 대해서는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덕룡 의원을 아는 사람은 그를 비판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가 돈을 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 대해서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는 무죄다. 물론 같은 의미에서 박성범 의원 역시 무죄라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만일 필자가 김 의원이나 박 의원의 심성을 모른다면, 그리고 그 과정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들에 대해 과감하게 메스를 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당내 갈등 요인에 의해 희생양이 됐다는 것을 알면서 어떻게 그들을 비판할 수 있겠는가.
필자는 이에 대해 동의하기 어렵다. 문제가 없으면, 그만이지 시기가 적절치 않다는 건 또 무슨 뜻인가?
사실 시기로 따지자면, 지금 국정감사가 시작되는 시기인 만큼 이보다 더 적절한 시기가 어디에 있겠는가. 유권자들이 국회의원을 선출해 준 것은 바로 이런 시기에 능력을 발휘하라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각종 언론은 김 의원이 ‘북핵실험 사태가 정국을 강타한 지난 10일 슬그머니 정치 재개를 선언했다’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다.
남 의원의 “적절치 않다”는 발언은 다분히 이 같은 여론을 의식한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이를 본 독자들이 필자에게 ‘왜 칼을 들지 않느냐’고 항의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아예 노골적으로 ‘북 핵실험 사태라는 국가 위기상황을 이용해서 개인의 도덕적 문제에 물타기를 시도했다’는 비난의 글을 쓰라고 독려하는 사람도 있다.
그 때마다 필자가 오히려 그들에게 되묻는다.
그(김덕룡 의원)를 아느냐. 그리고 그 과정(공천과정)을 필자만큼 잘 아느냐.
물론 대답은 ‘아니올시다’다.
남 의원도 그를 잘 알 것이다. 물론 그 과정도 필자만큼이나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렇다면 “문제없다는 건 재판부도 인정했다”면서도, 정치재개 선언시기에 대해서는 “적절치 않다”는 식의 우유부단한 발언은 삼가였어야 옳았다.
문제가 있다면 죽어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없다면 언제든 상관없다.
이런 논리가 바른 논리다.
필자의 글발(?)이 죽었다고 지적하는 독자들도 이런 점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론을 의식해 누구를 비판하는 글을 쓰고픈 마음은 추호도 없다.
사정을 모르면 모르되 알고서야 어찌 그런 글을 쓰겠는가.
사실 필자의 필력이 약해진 것이 아니라, 필자가 그만큼 많은 것을 알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면 지나친 자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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