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거국내각 구성’은 헛발질

고하승 편집국장

시민일보

| 2006-11-09 19:41:19

{ILINK:1}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관리형 내각을 구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야 의원들로부터 거국내각을 구성하자는 요구가 잇따랐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강대표가 제안한 ‘관리형 내각’과 열린우리당 의원이나 한나라, 민주당 의원들이 주장하는 ‘거국내각’ 혹은 ‘비상내각’은 분명히 차원이 다른 것이다.
우선 강재섭 대표는 지난 8일 오전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정기국회가 끝나면 전문성과 중립성을 갖춘 인물들로 관리형 내각을 구성할 것을 요구한다”며 “여당 당적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물러나야 하고 내각은 민생과 공정한 대선 관리에 전념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반면 9일 국회 정치분야 대정부 질문에 여야 의원들은 정기국회 이후 정파를 초월한 ‘거국 내각’ 혹은 ‘비상내각’ 구성을 한목소리로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실제 열린우리당 김부겸 의원은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지금이야 말로 거국내각을 구성하는 것이 국민들의 바람에 부응하는 대승적 결단이라고 생각한다”며 ‘거국내각’ 구성을 제안했다.
같은 당 최규식 의원도 “정기국회가 끝나면 내년 초에 각 분야에서 국민적 신망을 얻는 인사들을 중심으로 ‘거국적 위기관리 내각’을 구성하고 대통령이 정쟁에서 벗어나 국정에 전념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한나라당 정종복 의원은 “대통령이 진정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국가안위를 생각한다면 정파를 초월한 ‘비상안보내각’을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조순형 의원도 “노 대통령은 이미 집권당으로서의 의지와 능력을 상실한 열린우리당을 탈당하고 ‘거국적 비상내각’을 구성해 국정에 전념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강재섭 대표의 ‘관리형내각’과 김부겸 의원의 ‘거국내각’, 최규식 의원의 ‘거국적 위기관리 내각’, 정종복 의원의 ‘비상안보내각’, 조순형 의원의 ‘거국적 비상내각’은 같은 것인가.
아니다. 이미 서두에서 밝힌 바와 같이 그들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우선 강재섭 대표가 요구한 ‘관리형 내각’구성 요구는 민의를 존중하고 국익을 지킬 중립적 전문가를 기용하라는 것이다.

즉 코드에 맞는 정치 지향적 인물로 채워진 정치내각이 아니라 탁견과 전문성을 두루 갖춘 경제 전문내각 구성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한명숙 총리와 청와대는 이를 잘못 해석하고 있다.
한 총리는 이날 국회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여야가 내각의 구성이나 절차, 실효성에 대해 정말 합의를 해서 책임 있는 요청을 해온다면 얼마든지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답변했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도 같은 날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내각 구성에 대해서 여야가 합의해서 요청하면 대통령은 여야 대표들과 협의할 용의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즉 여·야 합의라는 정치적 전제가 있을 경우에 거국내각이든 비상내각이든 협의할 뜻이 있다고 밝힌 것이다.
이는 “‘정치성을 완전히 배제한’ 관리형 내각을 구성하자”는 강재섭 대표의 요구에 청와대와 정부가 “‘여·야 합의라는 정치성을 전제한’ 거국내각 구성용의”라고 답한 것으로 ‘동문서답’인 셈이다.
따라서 큰 맘(?)먹고 “거국내각 구성용의”를 밝힌 정부와 청와대의 입장표명은 헛발질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정권포기 선언이나 다름없는 거국중립내각이라는 중차대한 문제를 국민들에게 내팽개치듯이 불쑥 제기하는 청와대와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 아무리 국회에서 질의가 있었다고 해도, 대정부 질의에 대한 답변을 핑계로 성사되지도 않을 ‘거국중립내각’구성을 그렇게 쉽게 내뱉을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의 국가위기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청와대와 정부, 여당 등 여권에게 있다.
그것이 북핵으로 야기된 안보위기든, 부동산 정책 실패로 야기된 경제위기든 모두 여권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여권이 ‘거국내각’의사를 밝힌 것은 아무래도 이에 대한 책임을 일부라도 야당에게 전가해 보려는 ‘꼼수’인 것 같아 여간 씁쓸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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