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이야기
한나라당 맹형규 의원
시민일보
| 2006-11-28 17:43:48
저녁 무렵, 원내총무에게전화 한 통을 받고 나서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일 새벽 네 시까지 팔레스호텔로 나오셔야겠는데요.”
나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세상을 온통 술렁이게 했던 노동법을 우리끼리라도 통과시키겠다는 말이었다. 그것도 날치기로. 정치부 기자 생활을 오래 하면서 날치기를 여러 번 보아 왔지만 내가 그 뉴스 속의 주인공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잠이 올 리가 없었다.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날치기란 단어 자체만으로도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 더욱이 당내의 의견도 모두 통일된 상태가 아니었다. 내가 속한 공부 모임 의원들만 하더라도 “노동법을 건드리면 정권이 날아간다”고 경고를 하고 그것만은 안 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던 터였다. 왜 그렇게 서둘러 통과를 시켜야 하는지 소속 의원들조차 설득시키지 못한 법안을 날치기로라도 통과시키겠다는 속내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정리해고니 비정규직이니 하는 조항을 법으로 정해 놓는다고 해서 노동시장이 갑자기 유연해질지도 의문이었다.
이튿날 새벽, 시간이 늦어서 버스를 놓쳤다며 빠진 딱 한 사람을 제외하고 다른 의원들은 모두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호텔로 모였다. 그리고 곧장 준비해 둔 버스에 올라탔다.
의사당은 불도 밝히지 않은 상태였다. 정문도 아닌 후문으로 마치 도둑고양이나 되는 양 살금살금 발걸음을 옮기면서 ‘내가 이 짓 하려고 의원이 되었나?’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마치 신한국당이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속품 취급을 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참담했다.
노동계가 들고 일어났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길거리는 연일 노동자와 학생들이 벌이는 시위로 몸살을 앓았고,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총파업이 전개되었다. 정국은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결국 김영삼 대통령이 나서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는데, 이게 또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다. 사과하는 태도가 너무 당당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분노한 노동자들이 이전보다 더 거칠게 들고일어나 오히려 사과를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았다. 어쩔 수 없이 두 번째 사과를 계획하게 되는데, 두 번째 사과문 발표 전 대통령이 나를 찾는다기에 급히 청와대로 들어갔다.
당시 한보 문제도 슬슬 불거지기 시작하던 시점이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대통령은 내가 아는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어떤 일에도 자신감이 넘치고 활달한 모습을 보여 왔던 패기 있는 대통령이 그날은 무척 시무룩하고 활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얼굴은 초췌하고 머리도 부스스해서 더욱 그래 보였다.
대통령은 방송에 대해 물어 왔다. 다음 사과문 발표 때에는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물음이었다. 나는 지난번 사과문을 본 소감을 말씀드리고 프롬프터와 원고를 번갈아 보는 법이라든지 국민들로 하여금 대통령이 정말 사과를 하는구나라고 느낄 만한 내용을 적어 달라는 주문을 하고는 청와대를 나왔다. 마음이 무거웠다.
두 번째 대통령의 사과는 첫 번째와 달라 분위기를 많이 회복할 수 있었지만, 결국 물밑에서 용틀임하던 한보 사건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상황은 더욱 나빠져 갔다. 날치기로 통과된 노동법은 1997년 3월, 여당과 야당이 협상을 통해 법안을 개정해 새롭게 통과시켰다. 불과 석 달도 채 안 되어서 다시 개정할 법률을 도대체 무엇 때문에 무리를 해서라도 통과시키려고 했는지 나는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른다. 두고두고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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