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폐업’ 통합당과 싸워 이기려면…
고 하 승 편집국장
시민일보
| 2006-12-03 18:06:23
{ILINK:1} 서울 은평구청 인근에 ‘폐업 파격 세일’이라는 문구를 붙여 놓은 옷 가게가 두 개나 있었다.
며칠 전 필자는 옷가게 주인이 폐업을 위해 불가피하게 할인판매 하는 것으로 여기고, 대학에 다니는 아이들 겨울옷을 장만하기 위해 두 아들과 함께 그 옷가게들을 찾았었다.
아이들 반응은 냉담했다.
옷이 비록 싸기는 하지만, 마음에 드는 물건이 없다는 것.
두 가게를 모두 돌아본 후 큰 아들은 “철이 지나거나 유행이 지난 옷을 덤핑으로 판매하기 위해 ‘위장폐업’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 두 가게의 간판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큰 하나의 가게로 통합되면서 새로운 간판이 나붙었다.
물론 주인장의 얼굴은 그대로다. 다만 하나의 주인에서 두 명으로 수만 늘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인근의 다른 옷가게들은 그 여파로 인해 장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울상이다. 당초부터 두 가게를 합친 것보다 더 큰 가게도 다를 바 없다.
이제 머지않아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문을 닫고, 하나로 합치면서 ‘통합신당’이라는 새 간판을 내걸게 될 것 같다.
실제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이번 주 소속 의원 전원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정계개편의 방향을 정한다는 방침이다.
비록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통합신당은 지역 당으로의 회귀”라며 강력히 반대 입장을 표명한 바 있으나, 당내에는 의정연과 참정연, 영남권 인사들이 주축이 된 친노파가 40여명에 불과해 재창당 보다는 통합신당에 대한 지지가 높게 나타날 것이다.
민주당 역시 ‘독자생존론’을 주장하는 한화갑 대표를 제외하면, 상당수의 현역 의원들 사이에서는 열린우리당, 민주당, 고 건 전 총리 등 범여권 세력이 제3지대에 일제히 모여 신당을 만들자는 ‘헤쳐모여 신당’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다.
결국 우리당의 정계개편 방향은 민주당과 함께 하는 통합신당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의 ‘폐업’은 정말 문을 닫기 위한 폐업인가?
아니면 손님을 끌기 위해 ‘폐업 파격 세일’이라는 문구를 달고, 나중에 간판만 바꿔다는 식의 ‘위장폐업’인가?
즉 DJ.노무현 등이 함께 하는 당, 주인장의 얼굴은 바뀌지 않고 한 명에서 두 명으로 증가한, 이름만 ‘통합신당’이 탄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말이다.
오죽하면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이 “집권여당이 정계개편을 둘러싸고 심야회동이니 설문조사니 하면서 연일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면서 “이리 저리 패를 옮기면서 사람들의 눈을 속여 이득을 챙기려는 시골 장터의 야바위꾼들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겠는가.
그러면 그렇게 말하는 한나라당은 어떠한가. 제대로 장사를 하고 있는가.
아니면 ‘폐업 파격세일’이라는 문구를 내건 인근 가게에 손님을 빼앗기듯, ‘통합신당’이라는 그럴듯한 문구를 내건 여권의 정계개편 논의에 주도권을 빼앗기고 있는가.
불행하게도 한나라당은 장사를 잘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사실 성격상 큰 차이가 없다. 규모(지지율)도 도토리 키재기식으로만 고만하다. 설사 둘을 합친다고 해도 한나라당이라는 가게보다 규모가 훨씬 적다.
하지만 정작 두 가게가 합친다면, 그 파괴력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기고만장한 나머지 제 식구들을 내치는 데만 주력해 왔다. 지난 5.31 지방선거 당시 죄 없이 당으로부터 고발당한 김덕룡 의원과 박성범 의원이 그 단적인 사례다. 실제 당사자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으나, 주변에서는 끊임없이 음모론이 흘러나오고 있다. 김 의원과 박 의원은 당내 대권주자들의 싸움에 의한 희생양이라는 것.
음모론의 희생양으로 지목되기는 홍문종 전 경기도당 위원장도 마찬가지다.
협소한 가게를 통합하면서 종업원들을 점차 늘려가는 가게와 큰 가게에서 주인이 되기 위해 종업원을 들을 마구잡이로 쳐내는 가게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거듭 말하지만 손님이 ‘위장폐업’에 이끌려 간판만 바꿔다는 가게를 찾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손님의 몫이 아니라, 인근 가게 주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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