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행복하게 사신다죠”

한나라당 배일도 의원

시민일보

| 2007-01-01 18:37:55

모든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덕담이다. 이렇게 저렇게 인연을 맺은 얼굴들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머릿속으로 그 지인들에게 건넬 이런저런 덕담들을 생각해 본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이들에게는 “올해에는 부자가 되신다죠”라 하고, 몸과 마음이 아픈 이들에게는 “올해에는 건강하게 사신다죠”라 하고, 대선 후보들에게는 “올해에는 대통령이 되신다죠”라 한다.

새해를 맞아 나누는 우리의 전통적인 덕담의 표현 방식은 이렇듯 과학적인 판단을 넘어선다. 현실을 냉철하게 본다면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혹은 “행복하게 사시리라 믿습니다” 정도가 어울리는 말이 될 것이다. 그런데 바라는 바가 마치 꼭 그대로 이루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단정적으로 “행복하게 사신다죠”라고 인사를 건넨다.

왜 그럴까? 상대방의 소원이 꼭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따뜻한 마음을 담은 표현이 아닐까? 행복은 꿈꾸는 자의 것이니, 아무리 힘겨운 일이 닥쳐온다 해도 꿈을 버리지 말라는 격려가 아닐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요즘 그런 전통적인 표현 방식으로 인사를 주고받는 것이, 마음으로부터 그런 덕담을 나누는 것이 좀 어색한 세상이 되었다.

달라진 언어 습관 탓에 그런 오해의 소지가 없지는 않지만, 전통적인 덕담이 낯설게 보이는 것은 보다 본질적인 문제가 아닐까 한다. 새해를 맞아 우체부들의 짐을 더욱 무겁게 하는 연하장을 보자. 거기에는 온갖 축복과 기원의 말들이 넘치지만, 그래서 연하장 그 자체는 기쁨으로 마음껏 웃고 있지만, 정작 그것을 주고받는 사람들은 그리 썩 유쾌하게 웃지 못한다.

프랑스의 르네상스 작가 라블레의 표현대로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로서, 동물 가운데 웃음을 아는 것은 사람밖에 없다고 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거짓으로 짓는 웃음이 아닌, 맑은 물이 솟는 샘 같은 웃음이 메말라진 것은 도대체 무슨 까닭일까? 연하장은 왜 저 혼자 웃고, 그 주인인 사람들은 왜 기꺼이 웃지 못할까?

우리 국민이, 이 나라가 희망을 잃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리 봐도 어둡고 저리 봐도 어두운데 그 절망 속에서 어찌 맑은 샘 같은 웃음을 지을 수 있겠는가. 어찌 “올해에는 행복하게 사신다죠”하는 덕담을 진심으로 나눌 수 있겠는가.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런 덕담조차 진실로 나누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우리 사회를 보면, 이리 봐도 저리 봐도 그러한 꼴불견의 장면이 너무도 많아 우리의 눈을 피로케 한다. 요즘 대한민국에서 ‘네 탓’은 생활화되어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이러하니 이 나라가 절망을 딛고 일어서서 희망을 찾는 게 그리도 힘겨운 게 아닐까?

새해를 맞아, 타인이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덕담을 서로 나눌 수는 없을까? 연하장만 저 혼자 웃을 것이 아니라, 그것을 주고받는 우리 사람들이 웃어야 하지 않을까?

“새해에는 행복하게 사신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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