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이라고?… 아! 정말 짜증난다”

고하승 편집국장

시민일보

| 2007-01-09 19:11:59

{ILINK:1} 노무현 대통령이 9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대통령 4년 연임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을 공식 제안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담화에서 “1987년 개헌과정에서 장기집권을 막고자 마련된 5년 단임제는 그 사명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며 대통령 4년 연임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을 제안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4년 연임제로 조정하면서 현행 국회의원 임기와 맞추는 것을 동시에 제안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또 “선거 공명성과 투명성이 비약적으로 제고되고 국민적 의식 또한 성숙한 오늘날 장기집권의 우려는 사라졌고 오히려 많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당위성과 명분 측면에서 보자면 노 대통령의 이 같은 제안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노 대통령의 “(단임제는)임기 후반 책임있는 국정을 어렵게 만들어 심하면 국가 위기를 초래하기도 한다”는 발언이나 “4년의 1회에 한에 임기를 이어가면 (국정의) 안정성을 제고하고 국가과제 연속성 확보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는 발언에 대해서는 필자도 동의한다.

오히려 개헌논의는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지난 1987년 제정된 헌법은 독재자의 장기집권 방지를 위해 단임제를 실시하도록 하고 있으나 단임제는 이후 변화한 정치 환경과는 맞지 않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특히 총선과 대선의 동시 선거를 통해 수천억원에 달하는 선거비용을 절감하고,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정쟁과 국론 분열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노 대통령의 제안은 적극 검토할 만한 사안이다.

실제 그동안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의 임기를 조정하는 ‘원포인트’ 개헌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고 건 전 총리를 비롯, 김근태 의장, 정동영 전 의장, 임채정 국회의장, 김원기 전 국회의장, 장영달 의원, 한화갑 민주당 전 대표 등 범여권의 주요 인사들은 물론이고, 한나라당에서도 지난해 박 진 서울시당 위원장 등 12명의 의원들이 모임을 발족해 개헌문제를 적극적으로 논의한 바 있다.

당위성과 명분 면에서 충분히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는 데다, 여야 정치권에서조차 개헌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이런 상황에서 개헌은 단지 시기문제만 남았을 뿐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를 전해 듣는 시민들은 한마디로 “개헌이라고?...아! 정말 짜증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노 대통령이 ‘정치’의 ‘정(政)’자만 꺼내도 시민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심지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참 나쁜 대통령이다. 국민이 불행하다”며 “대통령 눈에는 선거밖에 안 보이느냐?”고 비난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조기레임덕을 우려하는 노 대통령이 정치적 어젠더를 선점해 ‘판 흔들기’에 나서려는 의도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명분이 있고, 당위성이 있더라도 한 자락 깔려 있는 저의가 불순하다면 결코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정치권 일부에서의 ‘정략적 의도’지적에 “결코 어떤 정략적인 의도도 없다”고 못 박은 뒤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 일치는 어느 정치세력에게도 유리하거나 불리한 의제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그간 발언들을 종합해 볼 때에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어려운 측면이 있다.
실제 노 대통령은 위기 때마다 대연정 발언을 비롯, 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며 권력구조 개편이 절실하다고 주장해 왔었다.

즉 ‘위기탈출’용으로 개헌을 입버릇처럼 언급했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번에 그 타당성과 명분이 인정되더라도, 선뜻 동의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이런 점에서 ‘억울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어쩔 수 없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심정을 몰라주는 시민을 향해 ‘억울함’을 호소하기보다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거듭 말하지만 개헌은 필요하다. 다만, 노 대통령이 직접 개헌을 언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제아무리 그 동기가 순수하더라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상황을 이렇게 만든 것은 노 대통령이 적대시 하는 언론이 아니라 노 대통령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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