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낌 없던 참 선비, 삼봉 정도전
김 정 기(한나라당 노원병위원장)
시민일보
| 2007-02-08 20:03:12
{ILINK:1} 우리는 지금 전 세계가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서로 온갖 정보를 교류하는 지식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시대는 분명 세상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하는 시대이며, 이 속도를 타고 21세기는 단기간 내에 새로운 문명을 수없이 탄생시킬 태세이다. 그러니 이 새로운 문명의 여명기에 놓인 우리가 어떠한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선인교 나린 물이 지하동에 흘러 들어 반천 년 왕업이 물소리뿐이로다. 아희야, 고국흥망을 물어 무엇하리오.
개경 선인교 아래로 흘러가는 물소리 따라 500년 고려의 역사도 이미 흘러가 버렸다. 옛 왕조에 대한 그리움을 말해 무엇 하겠는가. 모든 미련일랑 흐르는 물소리에 흘려보내고 새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개경을 떠나 한양으로 향하는 정도전, 그에겐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 그에게 서산에 지는 노을이나 가을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해는 아침마다 동녘에서 떠오르는 법이요,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 것도 자연의 섭리인데 이제 주어진 현실에 발 딛고 살아볼 일이다.
정도전은 500년 왕업이 필적에 묻혀 다시 일어날 길 없는데, 패망한 왕조를 탄식해봐야 무슨 소용이냐며, 이제 모두 훌훌 털고 일어나 새롭게 주어진 세상을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고 이렇게 거침없이 부르짖는다.
그는 일필휘지 붓발을 날려 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유학의 주춧돌을 놓고, 또 한편 칼을 휘둘러 새 왕조의 터를 닦는 정지 작업을 완성했다. 삼봉 정도전은 흔히 떠올리는 온유한 선비 상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그는 현실을 직시했다. 벼룩의 간을 내어 먹듯 가난한 백성들의 땅뙈기를 빼앗아 부를 누리는 권문세가, 원나라와 명나라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외교적 실책 등 왕조의 몰락을 예고하는 혼란한 사회상을 그저 안타까워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백성을 위한 세상과 신민 정치를 꿈꾼 그는 개혁을 향한 열정과 여말 신흥 세력인 사대부의 기상을 겸비했었기에 조선시대를 일관하는 선비들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모습으로 부각된다.
나는 기술산업 시대를 벗어나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빠르게 지식 정보 사회로 변화하고 있는 요즘, 과연 우리에게 요구되는 인간상은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내 나름의 해답으로 삼봉 정도전을 떠올렸다. 이성계를 도와 새 왕조를 열고,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아 문물을 정비하며 개혁적 정치가로 활약한 정도전이 다시금 내 인생의 모델로 떠오른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바라는 선비는 공리공론을 일삼는 관념형 인간이 아니라, 현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그러면서도 현실에 얽매이지 않으며 현실을 좀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려는 이념형 인간이어야 한다고 본다.
디지털 시대에 웬 조선시대 선비 타령이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상을 다름 아닌 선비에게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가 표상으로 삼을 만한 선비란 어떤 존재인가? 나는 삼봉 정도전에게서 이 질문에 대한 아주 명쾌한 답변을 찾았다. 정도전이야 말로 우리 시대가 본받을 참선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고려 말 친원파에 밀려 나주로 유배를 가게 되었을 때 “예부터 사람은 한 번 죽는 것”이라고 말하며, 명을 거역할 수는 없지만, 명을 다스리는 것은 인간의 몫이라고 한 비장한 현실주의자다.
그의 가슴은 부패한 정치를 척결하여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 무너진 도덕을 일으켜 기강이 바로 선나라, 백성들의 나라를 열어야 한다는 열정으로 타올랐다. 그는 “군주는 국가에 의존하고, 국가는 백성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백성은 국가의 근본인 동시에 군주의 하늘”이라고 했다. 역성혁명의 사상적 기반이 되는 민본주의의 천명이다. 어려운 시대를 새로운 시대를 여는 기회로 삼은 그의 정신은 바로 인간에 대한 사랑을 근본으로 한 것이다.
그런 사랑과 열정이 바로 삼봉 정도전을 참된 선비로 우뚝 서게 한 저력이다. 정도전이 추구한 실천적 선비의 모습은 ‘경제적 자립인, 정신적 자율인, 인격적 완성인’으로 21세기가지향하는 새로운 정보 사회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인간상이라 여긴다. 어질고 유능한 사람들을 맞아들이고 간사한 사람들을 쫓아내어 천하의 사람을 모아 천하의 일을 다스리는 것은 재상의 직책이다.
어찌하여 당이 없는 것을 옳다고 말하고 당을 가진 것을 그르다고 말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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