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퇴출제 고위직부터 시행하라
고하승 편집국장
시민일보
| 2007-04-11 19:59:13
{ILINK:1} 박명재 행정자치부 장관은 최근 서울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 중인 공무원 퇴출제와 관련, 지난 10일 오후 기자간담회를 열고 “퇴출제가 아니라 경쟁과 성과에 입각한 인사쇄신이며 바람직하고 공감하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박 장관은 이에 따라 “구체적인 원칙과 시행지침을 검토해 행자부에도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공무원노조 단체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날 박 장관은 공무원 인사쇄신 원칙으로 “현행 법령상 규정절차 준수, 대상자에 대한 평가기준 확립, 부적격 공무원에게는 업무복귀 기회 부여, 직업공무원 제도 취지와 조화”를 꼽았다.
행자부는 인사쇄신 대상자의 선정기준으로 ▲직무수행 능력의 부족하고 근무성적이 불량한 경우 ▲근무 불성실·태만·불친절 ▲비위관련자 공사 생활에 무리를 야기하는 경우 ▲공무와 상관없는 중증으로 정상적 업무 수행 곤란 ▲기타 개인적 과실로 예산상 손실 초래 등으로 검토하고 있다.
행자부는 이같은 대상자 기준을 일정기간 고지하고, 선정심의위원회를 설치할 예정이다.
또 대상자로 선정된 공무원을 대상으로는 가능한 소명기회를 부여하고 ‘직무향상 프로그램’을 운영할 방침이다.
그러나 박 장관은 이같은 제도의 시행시기와 규모에 대해서는 “검토 중”이라고 말하고 구체적으로 못 박지는 않았다.
이런 앞뒤 정황을 미루어 볼 때 박 장관의 이같은 발표는 아직 아이디어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것 같다. 어쩌면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하고 있는 3% 퇴출제가 ‘반짝’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데 대한 부러움의 표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따라서 공무원노조 단체의 반발이 매우 심각할 것이라고 판단했었다.
그런데 박 장관의 발언을 지켜보던 공무원노조 단체들의 반응은 “일찌감치 예견된 일”이라며 크게 동요하는 기색이 아니다.
행자부 장관의 방침은 공직사회의 구조조정을 단행하겠다는 정부 정책의 일환 중 하나로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 따라서 일찌감치 예견된 일이라는 입장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공무원 노조 단체들이 이를 당연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비정규직 노조 문제, 부동산 투기 등 정책에서 잇따라 실패한 정부가 하위직 공무원들을 희생양으로 만들고 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현행법과 제도에 따라 충분히 무능한 공무원을 가려낼 수 있는데도 서울시와 행자부가 공무원 퇴출제를 도입한다고 밝히는 것은 일시적 인기에 영합한 정책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다만 예견된 일이니 만큼 크게 놀라지 않을 뿐이라는 것.
이 같은 현상을 바라보는 필자의 마음은 씁쓸하기 그지없다.
공무원 신분 보장을 피난처 삼는 무사안일한 공직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퇴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나, ‘하위직 공무원들을 희생양으로 만들고 있다’는 주장 모두 나름대로 일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퇴출제를 지지하는 여론이 압도적인 상황에서 공무원노조 단체들의 주장에 힘이 실리지 않고 있다.
국민들은 오히려 그들의 반대 목소리를 ‘철밥통 지키기’라며 비난하고 있는 마당이다.
그러면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됐을까?
그 일차적인 책임은 물론 공무원 자신들에게 있다. 필자는 공무원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의 좀처럼 변하지 않는 생각에 ‘벽’을 느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그들을 지켜보노라면, 답답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모든 책임을 그들에게만 전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바로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일을 열심히 하다가 실수하는 사람보다, ‘가만히 있어도 중간’이라는 생각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더 우대받는 조직을 만든 게 누구인가?
공무원 사회가 진정으로 변하려면 하위직보다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깨져야 한다. 따라서 퇴출제는 당장 고위직부터 시행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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