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이 아니라 박근혜가 양보했다

고하승 편집국장

시민일보

| 2007-05-15 16:42:40

{ILINK:1} 두 사람이 거리에서 심각하게 다투고 있었다.

세 가지 물건을 놓고 한 사람은 “무조건 내 것”이라고 우기는 반면, 또 한 사람은 “상대방이 도적질해 갔다”고 하소연했다.

때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경찰이 ‘무조건 내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의 손을 들어 주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경찰의 판단은 잘못된 것이었다. 그 물건은 모두 도적질 당한 게 맞다.

그런데도 경찰은 “내가 내린 결정”이라며 “두 사람 모두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옷을 벗겠다”고 오히려 으름장을 놓았다. 자신의 주장을 철회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재미있는 싸움을 보기 위해 주위에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그러자 세 가지 물건을 도적질해 간 사람이 “내가 양보한다”며, 그 가운데 하나만 골라 원래 소유자에게 돌려주었다. 물론 나머지 두 개는 고스란히 챙겼다.

그러면 구경꾼들은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까?

당연히 “나머지 두 개마저 원 주인에게 돌려주어라”하고 도적놈을 향해 질타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구경꾼들은 정확한 내용을 모른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하나를 양보해 준다고 하는데, 더 이상 싸우지 말라”며, 오히려 도적놈의 아량을 칭찬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물건을 잃어버린 사람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그 하나를 돌려받은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다투다가는 교통체증으로 인해 다른 보행자들이 불편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양보한 사람은 누구일까?

도적질해 간 세 가지 물건 중 하나만 원주인에게 돌려준 사람일까?

아니면, 죄 없는 경찰관이 순간적인 상황판단 잘못으로 옷을 벗는 상황과 보행자들이 불편을 겪는 상황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 그 가운데 하나만 돌려받고 물러선 원 소유자일까?

지금 필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 한나라당 ‘경선 룰’ 다툼을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들은 벌써 눈치를 채고, 쓴 웃음을 짓고 있을 것이다.

지난 14일 각 언론은 “한나라당을 파국으로 몰고 가던 ‘강재섭 중재안’이 결국 ‘이명박 양보안’으로 결론이 났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그렇다면, 정말 이명박 전 시장이 양보를 한 것인가?

세 가지 중에 하나를 양보한 것은 맞다.


실제 이 전시장은 강재섭 중재안 ①항(선거인단 20만 명→23만1652명)과 ②항(투표소 시.군.구 설치, 전국 동시 경선), ③항(일반 국민 투표율 최저 67% 보장) 가운데, ③항만을 포기했다.

결과적으로 이 전 시장은 ①항과 ②항은 고스란히 자신의 몫으로 챙긴 셈이다.

하지만 ①항과 ②항 역시, 당초 ‘8월-29만경선’ 합의안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박 전대표로서는 세 가지 도적질 당한 물건 중, 하나만 돌려받은 셈이다.

사실 ①항과 ②항은 이명박 전 시장에게 있어서는 ③항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었다.

특히 ②항의 경우는 이 전 시장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욕심나는 조항이었다.

반면, 박 전 대표에게는 너무나 불리한 조항이다.

노무현 후보가 돌풍을 일으켰던 2002년 민주당 경선 때처럼 후발 주자가 선두를 따라잡으려면 전국 순회 경선이 필요하다. 특히 ‘후보 검증’이슈를 확산하는 데도 순회 경선이 절대적이다.

그러나 이 전 시장이 ②항을 챙김으로서 ‘후보검증’을 피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물론 선거인단을 조금 더 늘린 중재안 ①항도 이 전 시장에게 유리한 요소다.

비록 큰 차이는 아니지만 박빙의 승부가 벌어질 때는 판세가 뒤바뀔 수도 있는 수치이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 측 이규택 전 최고위원이 14일 “얻은 게 하나도 없는데 뭐 하러 합의해 주느냐”며 볼멘소리를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당의 분열 방지’라는 대의를 위해 기꺼이 이를 수용했다.

양보는 이명박 전 시장이 한 것이 아니라, 박근혜 전 대표가 한 것이다.

박 전 대표를 지지하는 한 네티즌은 15일 이렇게 한탄하는 글을 올렸다.

“실리는 이명박이 전부 챙기고 대승적으로 양보 했다는 사기 언론 플레이로 명분까지 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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