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생부'가 `나눠먹기'보다 낫다
편집국장 고 하 승
시민일보
| 2008-02-18 14:35:49
한나라당내 공천갈등이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실제 한나라당은 4.9총선 공천 심사가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이른바 ‘살생부’라고 불리는 `현역의원 물갈이론'이 당내에 다시 확산되고 있다.
살생부에는 교체 대상인 현역 의원 30여 명의이름이 적시돼있는데, 이명박 당선인 측과 박근혜 전 대표 측 의원들의 비율이 각각 10여명 씩이며, 5명 가량은 중립 성향이라는 것.
물론 당내에 떠돌고 있는 이 같은 살생부를 누가 작성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박근혜 측에서는 이명박 당선자의 측근들이 작성했을 것이라며 강한 의구심을 보이고 있는 반면, 이 당선자 측에서는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정치적 음모를 꾸미려는 것""이라고 일축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필자는 누구의 말이 맞는 지 아직 모르겠다. 그리고 사실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살생부’ 존재여부와 관계없이, 공천은 정해진 당헌당규에 따라 ‘원칙’대로만 하면 되는 것이다.
즉 현역 의원 교체 여부는 계파를 의식하지 말고 공천 기준에 따라 공정하게 결정하면 된다는 뜻이다.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든, 친이(親李) 측 인사이든, 아니면 친박(親朴) 측 인사이든 관계없이 공천을 안 주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살생부’ 명단이라는 것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을 보면, 그 중에 힘 있는 몇 명은 양 측의 합의 따라 구제되고, 힘없는 사람들만 ‘희생양’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일 것이다.
이미 당 윤리위원회는 자신들이 징계했던 당내 인사 50여 명의 명단을 공천심사위원회에 건넨 상황이다. 따라서 그걸 공천의 척도로 삼으면 아무 문제없다.
즉 현재 한나라당내에 떠돌고 있는 ‘살생부’는 그리 문제 될 게 없다는 말이다.
오히려 이 당선인과 박 전 대표가 `공정 공천'을 합의한 이후 현역 의원 물갈이 폭이 20% 수준으로 대폭 최소화될 것이란 소리가 들리는 데 이게 문제다.
이는 지난 17대 총선 때 기록한 43%의 절반 수준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이에 따라 당내 일부에서는 `나눠먹기 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즉 친이-친박계가 일부 현역을 떨어뜨리는 선에서 서로 핵심 인사들의 공천을 보장하기로 물밑 합의를 했다는 주장이다.
실제 현재까지 공천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단수후보 확정 지역에 `친이' 인사가 대거 포함됐지만 친박 진영에서 큰 문제를 삼지 않았다.
어쩌면 이 같은 밀약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는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로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공천을 ‘계파별 나눠먹기’ 식으로 진행 시켜서는 곤란하다는 말이다.
자질이 부족하거나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면, 그가 누구든, 설가 각 계파의 핵심이라고 해도 바꿔야 한다는 게 유권자들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이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아무래도 공천은 각계파간 ‘나눠먹기’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 과정에서 힘없는 일부 인사들만 ‘희생양’으로 삼을 것이 뻔하다.
실제 공천 탈락자들의 무소속 출마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게 그 반증이다.
현행 공직선거법(57조2항)에는 정당의 후보자 추천을 위한 경선규정이 마련돼 있으며 이 경선에 응한 후보자는 무소속 출마가 불가능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2배수니 3혹은 4배수니 하면서 1차 관문을 통과한 그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여론조사도 물론 후보자 간 서면합의 등이 있을 경우에는 경선으로 간주해 탈락자는 무소속이나 다른 정당후보로 나올 수 없게 된다.
즉 공천 탈락자는 아예 4.9총선 출마의 기회마저 차단당하고 마는 것이다.
어쩌면 나눠먹기 공천을 기대하던 박근혜 전 대표 측에서 이로 인해 큰 손해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차라리 ‘원칙’을 밀고 나가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즉 ‘나눠먹기’보다는 ‘살생부’가 낫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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