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 탈락자 달래기용 ‘자리 만들기’

편집국장 고 하 승

시민일보

| 2008-03-13 15:10:00

한나라당이 4.9총선 공천 탈락자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밥그릇’이라도 좀 챙겨 주려하지만 자리가 없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생각해 낸 묘수가 바로 ‘좌파 척결’을 운운하며, 법으로 임기가 보장된 인사들을 향해 “이전의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된 인사들 자진사퇴하라”고 압박하는 방법이다.

실제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인사들의 항의로 한나라당사는 몸살을 앓고 있다. 일각에서는 “무소속 출마 불사”라고 배수진을 치는가 하면, 또 다른 일각에서는 “신당창당”의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과반의석을 장담하던 한나라당은 목표를 수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위기다. 따라서 당 지도부는 이런 공천 탈락자들의 반발을 무마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마땅한 방법이 없다. 이미 장차관 자리는 꽉 차버렸고, 공공기관장들은 아직도 임기가 남아 있어 빈자리가 없다.

그래서 한나라당은 이들, 즉 법으로 임기를 보장한 공공기관장을 몰아낼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안상수 원내대표가 1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주요당직자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한 기관장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이념과 국정철학에 맞는 사람과 같이 일할 수 있도록 사의를 표명하고, 재신임을 묻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거듭 사퇴를 촉구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특히 심재철 원내수석부대표는 KBS 정연주 사장을 겨냥해 ""그 동안 국민 자산인 전파를 좌파 이념의 선전 도구로 전락시켰다""고 맹비난하면서 거듭 정 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박계동 의원 역시 ""이념과 철학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에 노무현 사람들이라는 매우 불합리한 동거가 유지되고 있다""며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된) 정부 산하 공공기관의 장과 임원은 새 정부 하에서 재신임이라는 과정을 밟지 않는 한 떠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물론 이들이 내세우는 명분은 ‘좌파척결’이지만, 실상은 공천에서 미끄러진 사람들을 달래기 위해 밥그릇을 챙겨주겠다는 의도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왜냐하면, 한나라당은 이미 김택기(강원 태백.영월.평창.정선), 이현재(경기 하남), 최종찬(경기 안양동안갑), 정덕구(충남 당진), 박상은(인천 중.동.옹진)씨 등 과거 여권에서 몸담고 있던 ‘철새’들을 공천한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정말 그들이 말하는 대로 ‘좌파 척결이 목적이라면 이런 철새들을 공천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따라서 한나라당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특히 노무현 정권 당시 대통령은 코드정치를 하면 안 된다고 하던 한나라당이 이제 와서 코드를 맞추기 위해 기관장들이 자진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치에도 맞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는 코드정치를 해서는 안 되고, 이명박은 코드정치를 꼭 해야 한다는 것이 과연 타당키나 한 것인가?

물론 한나라당의 다급한 사정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공천 탈락자들의 반발이 거세면 거셀수록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큰 폭으로 하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이들을 달래야 한다. 그래야만 당초 목표치인 과반의석 확보가 가능하다.

하지만 방법이 잘못됐다. 공천탈락자들에게 기관장 자리를 하나씩 내주면서 달래기보다는 제대로 된 공천을 진행해 처음부터 반발의 소지를 없애는 게 옳았다는 말이다.

비리 전력자나 철새들에게는 마구잡이로 공천을 주면서, 정말 경쟁력 있고 당을 위해 헌신해온 사람들은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쳐 버리는 공천을 하고 있으니 누가 그따위 공천을 순순히 따르겠는가.

필자는 지금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기관장들에게 용기 있게 그 자리를 지키라고 권하고 싶다.

법률로 임기제를 보장한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독립성과 업무의 효율성 보장 측면에서도 그렇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낙하산 인사’가 반복 되어서는 공기업의 선진화는 요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신이 그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효율성 측면에서도 매우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낙하산 인사’의 잘못된 관행에 쐐기를 박는 점에서도 옳은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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