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더러운 침묵에 침을 뱉는다
전 원 책(자유선진당 대변인)
시민일보
| 2008-03-19 19:05:32
단언하건대 이 나라엔 언론이 없다. 언론은 스스로 그 권능을 잃어버렸다. 자타가 최고의 권위라고 부르는 신문, 벌써부터 이 정부의 기관지라고 비아냥을 듣는 신문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다고 자랑하는 방송까지, 언론이라는 언론은 죄다, 공천이라 불리는, 이 더러운 정치적 흥정에 침묵하고 있다.
의회에는 경륜이 필요없는 것인지 고령이라는 이유로 다선(多選) 의원이 잘려나간다. 아무런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그래도 제 몫을 한다고 생각되던 젊은 의원들도 쫓겨난다. 그 자리엔 어김없이 그럴듯한 전직 언론인, 법조인, 정당인이라 불리는 정치 지망생, 그리고 교수들, 대중에게 적당히 얼굴과 이름이 팔린 인사들이 들어앉는다. 이건 아니다 정말 아니다 싶었던 의원들은 용하게 살아 남는다.
어떤 지역구 주민들은 완전히 무시당한다. 마치 자신들의 이익을 따라 아무런 연관 없는 지역들을 묶고 자르고 하는 게리맨더링처럼 후보자를 넣었다 뺐다 한다. 차이가 있다면 게리맨더링은 땅을 재단(裁斷)하는 것이지만 이건 사람을 가지고 장난질치는 것이다. 그 지역에 살기는커녕 한 번 살아보지도 않은 이들이 공천받는 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지난 의회에서도 서울의 부자 특구라는 강남구와 서초구에 사는 의원이 무려 64분이었다. 하긴 국회의원이 지역 주민의 대표가 아니라 국민의 대표라는 법정신에 비추어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멀쩡한 남의 동네에서 천연덕스럽게 날 뽑아 국회로 보내달라고 호소하고 다닌다는 건 보통 배짱이 아니면 못할 짓이다.
그런 일들 중 좀 심했다 싶으면 ‘전략공천’이라는 말로 포장된다. 동작을(乙) 같은 특정지역구가 느닷없이 야당의 전략공천 지역이 왜 되어야 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그 판에 여당인 한나라당은 전혀 엉뚱한 울산의 후보를 빼다 박는다. 이른바 맞대결이다. 그리고 그 동작을에 일찍이 공천받았던 인사는 아마도 낯설기 짝이 없을 고향인 고성 통영으로 간다.
이게 무슨 짓들인가. 동작을 주민, 고성 통영 주민, 울산 동구 주민들의 주권은, 그들이 마음대로 농락해도 좋은 것인가. 그 지역들은 자신들의 안방이고 텃밭이니 마음대로 요리해도 괜찮다는 말인가.
이 야단법석의 와중에 웃기는 뉴스 하나가 뜬다. ‘꼿꼿장수’라 불리던 지난 정권의 국방장관을 한나라당이 비례대표로 영입하자, 통합민주당은 우리와 먼저 비례대표에 합의했다가 그만 둔 분이라고 초를 친다. 그 분은 김정일 앞에 꼿꼿하게 악수했다 하여 ‘꼿꼿장수’가 된 모양인데 그렇다면 대한민국 모든 군인은 다 꼿꼿군인인가. 이 나라 대통령에게도 거수 경례 뒤에는 꼿꼿하게 서서 악수하는 것이 군인의 예절이고 군인이 아니라도 악수 때 고개를 숙이지 않는 것은 오랜 예법이 아니던가. 적장(敵將)인 김정일에게 침을 뱉은 것도 아니요, 뺨을 친 것도 아닌 그저 예절에 맞춰 인사한 것을 두고 그리 칭송하는 것은, 그 때 김정일에게 황공하다는듯 굽실거리던 이나라의 장관과 관리들 때문일 것이다.
그 ‘ 꼿꼿했던’ 국방장관은,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사병 복무기간을 18개월로 줄이는 말도 안되는 ‘개혁안’을 마련한 장관이다. 한미연합사 해체를 2012년으로 합의하고, 재협상을 해야 된다는 새 정부의 의견에 명백한 반대의견을 낸 사람이다. 그 분은 NLL을 지킨 것이 아니라 노무현 김정일 두 사람의 공동어로구역 평화수역 합의를 충실히 이행하여 서해의 NLL을 사실상 구멍 낸 사람이다. 이런 분이 당연하고도 당연한 악수 한 번으로 스타가 된 것은 순전히 우리 언론의 무지 탓이다. 아니 정직하게 말하면 알고도 거짓말하거나 눈감아버리는 황색저널리즘 정신 때문이다.
나는 이제 이 나라에 언론다운 언론은 없다고 믿는다. 정직한 언론, 눈치보지 않는 언론은 사라졌다. 정당이 포퓰리즘과 이미지정치로 협잡꾼처럼 국민을 속이고 있을 때 언론은 잠들어 있다. 죽음보다 깊은 잠에 취해 다시는 깨어나지 않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나는 몸을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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