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 망령이 우리 곁에 와 있다

이 기 명(칼럼니스트)

시민일보

| 2008-04-02 18:48:09

눈에서 불이 번쩍 났다. 머리가 띵 했다. 1956년 5월, 마포경찰서 사찰과 형사(오늘의 정보과)앞에서 나는 떨고 있었다.

신익희 후보(민주당 대통령후보)가 호남 유세를 가던 중 야간열차에서 급서했다.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독살됐다는 것이다.

경무대 앞에서 충돌이 발생했다. 이것이 이른바 이다. 지금의 광화문종합청사(당시 경찰무기고) 앞에서 나는 CIC(당시 특무대. 현재 기무사)에 체포됐다.

특무대 본부(효자동에 있었음)에서 며칠 얻어맞고 시경찰국으로 옮겼고 다음에는 마포서로 이송됐다.

대학1년생인 나는 누구의 지령을 받았느냐 돈은 얼마나 받았느냐는 질문과 함께 수도 없이 뺨을 맞았다.

경찰 사찰과는 일제 때 악명 높았던 고등계의 후예다. 오늘의 정보과다. 요즘 다시 각광을 받는다. 왜 이 말을 새삼스럽게 끄집어내는가. 한번 꾼 악몽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 전두환 시절, 한번 찍힌 사람들은 사는 게 고통이었다. 작가의 글도 한 줄 마음에 안 들면 호출이었다. 겁이 났다. 안부전화라고 하는데도 등줄기가 오싹했다. 중앙일보의 한수산 연재소설 필화사건도 그거다. 죄도 없이 좋은 시인 박정만이 그 일로 죽었다.

보안사 윤석양 일병의 감시자 명단 폭로사건도 정치사찰이었다. 마포경찰서에서 매 맞던 생각이 났다. 특무대 지하실 생각이 났다. 얌전하게 살자. 보기 좋은 글만 썼다. 참으로 치사한 삶이었다. 지금도 얼굴이 달아오른다.

경험처럼 좋은 스승은 없다. 자유당 때도 지식인들은 허약했다. 유신독재 때도 마찬가지였다. 언론은 어떤가. 차라리 웃자.

당근과 채찍은 언론을 위해서 만든 말이 아닌가. 정치언론인과 정치교수들은 쌔고 쌨다. 소리 한번 지르면 자라목처럼 들어간다. 간도 쓸게도 다 빼 놓고 아첨한다.

드디어 정보 공안 정치가 재등장했다고 걱정들을 한다. 경찰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 정말 아닌가.

활화산 같은 열정으로 업무를 추진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신념은 이 나라의 경제를 반드시 기적처럼 일으킬 것으로 믿는 국민이 많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도 이 나라를 위해서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반대가 그렇게 많고 2500명이 넘는 대학교수들이 한 목소리로 를 반대하는가.

그렇다면 공개적인 토론이 필요하다.

밀실에서 한반도운하를 추진한다든지 반대하는 교수들에게 정보과 형사들이 위협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은 유치한 행동임은 물론이고 대운하 건설의 부당성을 알리는 효과밖에 얻을것이 없다.

정보기관의 협박이나 감시로 반대론을 잠재울 수 있다는 생각은 버리는 것이 맞다. 그런 시도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지난 수십 년 간의 역사에서 입증이 되었다.

경찰이나 정보기관의 힘을 빌리는 행위가 더욱 큰 반발을 불러오고 혹시나 하던 기대를 충족시키기는커녕 엄청난 사회적 손실로 이어질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제 이 나라는 탄탄한 민주화의 요새 속에 튼튼히 자리잡고 있다. 만의 하나 20년 전에 공안정국이나 정보정치 시대로 되돌리려 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비참한 비극으로 끝날 것이다.

똑똑한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다. 그러나 착각을 잘 하는 동물이 정치인이다. 착각이 불러 올 결과 역시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도 걱정이 되는 것은 제동을 거는 브레이크가 없다는 것이다.

참모가 브레이크다. 참 말하기 힘들 것이다. “해 봤어! 가 봤어!”

그러나 해야 한다.

그들이 하지 않으면 국민이 하게 된다. 그 손실이 너무 크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때문에 되돌아가는 역사의 수레바퀴는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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