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당대표 맡을까?
편집국장 고 하 승
시민일보
| 2008-04-21 14:04:24
4.9 총선과 관련, 이른바 ‘박근혜계 대학살’ 불리는 한나라당 공천을 두고 박근혜 전 대표가 “내가 속았고, 국민들도 속았다”며 격노했다.
그런데 이에 대한 MB의 반응이 의외다.
그는 최근 강재섭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내가 속였다”고 자랑하지 않고, “나도 속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MB가 속았다고 믿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별로 없을 것이다.
어쩌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MB 자신도 잘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왜 MB는 이처럼 믿거나 말거나식의 발언을 굳이 해야만 했던 것일까?
그것은 박근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럼, 왜 박근혜가 필요했던 것일까?
우선 MB계에서는 좌장격인 이재오 의원의 낙마로 박근혜와 필적할만한 인물이 단 한명도 없다는 점이 문제다.
현실적으로 여론조사에서 박 전 대표를 이길 수 있는 인사가 거의 없는 데다 현장투표에 있어서도 섣불리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게 당 관계자들의 한결 같은 전망이다.
물론 당협위원장 수에서는 친이 측이 압도적으로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경선 당시 대의원과 당원들이 친이 진영에 줄을 선 당협위원장의 말을 듣지 않고 박 전 대표를 지지했던 것처럼 당대표 경선 역시 그 같은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특히 전대에서는 대의원이나 당원들이 1인 2표를 행사하는데, 그 한 표는 대부분 박 전 대표에게 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그 누구도 박 전대표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MB가 섣불리 친이 후보를 당권주자로 내세웠다가는 낭패 보기 십상이다.
즉 드러내놓고 특정인을 차기 대표로 밀었다가 박 전 대표에게 패할 경우, MB의 당 장악력이 크게 떨어지는 것은 물론, 국정운영마저 어려워 질 수 있다는 말이다.
더구나 박 전 대표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상당하다.
그래서 MB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박 전 대표에 손을 내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즉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하려면, 친이 독자세력만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사실을 간파한 MB가 박 전대표의 치맛자락이라도 붙잡아보려는 얄팍한 속셈에서 “내가 속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사실 4·9 총선 공천과정에서 MB와 박 전대표의 관계는 이미 틀어질 대로 틀어진 상태다.
그러나 ‘안정적 국정운영’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강력한 여당을 원하는 MB로서는 당 안팎에 60여명의 자파의원을 거느린 박 전 대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다.
그래서 MB는 “나도 속았다”는 말로, ‘청와대가 공천 과정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는 의사를 박 전 대표에게 전달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박 전 대표와의 ‘동반자’적 관계를 복원하려는 MB의 계산이 깔려 있는 발언인 셈이다.
즉 MB는 당권을 박 전 대표에게 넘겨주는 대신 그에게 국정운영상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는 형태의 관계복원을 모색하고 있을 것이란 뜻이다.
심지어 두 사람의 관계 재설정을 위한 매파로는 이상득 국회부의장이 구체적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그는 대통령의 친형이라는 점에서 MB의 의중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데다, 박 전 대표와의 관계에 우호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는 박근혜 전 대표의 선택이다.
그가 과연 당 대표를 맡을까?
당대표가 될 경우, 어쩌면 이명박 정부의 모든 잘못을 뒤집어쓰는 난처한 입장에 처할지도 모른다.
즉 대운하 추진과 의료보험 민영화에 대한 국민의 반발 등 이미 이명박 정부의 앞길이 순탄치 않음을 예고하는 일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데, 이런 덤터기를 박 전대표가 모두 뒤집어쓸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삼성동 자택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22일 당선자 워크숍에도 불참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어쩌면 박 전 대표의 침묵은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의사표현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박 전 대표가 당대표를 맡아 위기에 빠진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구하는 여전사가 될지, 아니면 이전투구가 벌어지는 당권경쟁에서 멀리 떠나 ‘나 홀로’ 고고한 정치인으로 남을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듯싶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