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에 끌려가는 우리 대통령
전 원 책(변호사)
시민일보
| 2008-05-13 18:43:09
이명박 대통령은 허니문을 잃었다.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몇몇 '보수매체'들마저 지금 이 대통령을 '씹어대는' 형국이다.
방송과는 한 판 제대로 붙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대통령의 지지도는 취임 초인데도 20%대로 주저앉았다.
임기 초에 닥친 이 이상한 '레임 덕'은 누구 탓인가.
국민들의 압도적인 여망을 안고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왜 시작부터 좌초하고 있는가.
이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경제다.
고매한 학식과 인격에 대한 존경심이나 경륜에 대한 기대는 결코 아니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의 근저에는, 민생을 챙기지 않으면서 하는 말마다 국민들 속을 뒤집었던 전임자에 대한 식상함이 깔려 있다.
국민들은 그저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경제와 국격(國格)을 높일 '조금의 품위'를 신임 대통령에게 기대했다.
그런데 인수위 때부터 온갖 사고(事故)가 빈발했다.
영어공교육을 비롯한 정책상의 난맥은 단순한 시운전 (始運轉) 사고가 아니었다.
그건 이 시대와 국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낳은 사고이다.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들의 인선이 능력보다는 대통령과의 인연이 기준이 된 것도 그 탓이었다.
이 와중에 미국 쇠고기 사건이 터졌다.
성과주의 교조(敎條) 아래서는 사고가 터질 수밖에 없었다.
쇠고기 수입 협상을 서둔 것은 한미FTA 비준동의를 얻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아니라고 하지만 이 대통령이 캠프 데이비드 별장에 가는 날에 맞추어 시한이 설정된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그 협상이 너무 일방적이었다.
받아낸 것은 하나도 없이 상대가 원하는 건 전부 내주었다.
어차피 미국 쇠고기를 받을 수 밖에 없으니 이것 저것 따질 필요도 없었고 눈치볼 것도 없었던 것이다.
내각인사에서부터 공천 그리고 쇠고기수입까지 5%의 상류층 국민들을 위한 정부라는 비아냥은 대통령이 자초한 것이다.
문제는 미국 쇠고기가 정말 위험한가 하는 것과 왜 그런 '굴욕적인' 협상을 했는가이다.
그래서 지금 온 국민은 광우병을 공부하는 중이다.
솔직히 보통 사람들이 특정위험부위(SRM)가 왜 위험한지 국제수역사무국(OIE)이 무얼 하는 곳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20개월 소와 30개월 소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소는 여물만 먹는 줄 알았는데 동물성 사료가 왜 문제가 되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미국 쇠고기가 위험하다는 사람들은 미국에 실제 광우병 소가 3마리밖에 없었지만 도축과정이 분명하지 않고 병력을 감추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캐나다 소가 미국에서 90일만 있으면 미국소로 둔갑하는 것도 문제라고 한다.
그런 판이어서 미국인들도 20개월 미만의 고기만 먹는데 우리는 30개월 미만으로 문을 활짝 연 데 분노하고 있다.
우리는 소의 모든 부위를 다 먹는 식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특정위험부위 가운데 편도와 소장 끝부분 외엔 전부 받기로 한 것도 문제였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해도 국제수역사무국에서 미국의 광우병통제국 지위를 바꾸지 않으면 우리가 수입을 금지할 수도 없게 되어 있다.
더욱이 '강화된 동물성 사료'를 쓰게 되면 '즉시' 30개월 이상도 다 받기로 했다.
광우병은 동물성 사료를 통해 교차 오염된다.
미국은 강화된 동물성 사료라면서 30개월 미만의 도축 불합격 소는 뇌와 척수를 제거하지 않고 쓸 수 있다고 하고 30개월이 넘은 소는 뇌와 척수만 제거하면 사료로 쓴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걸 몰랐는지 ,알고도 국민을 속였는지 30개월 미만의 소도 도축에 불합격하면 사료로 쓰지 못한다고 우겼다.
우리 정부가 협상에 임하면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다는 단적인 증거이다.
미국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사람들은 3억명 인구가 먹는데도 아직 미국에 광우병 환자가 없었다고 강변한다.
교포들이 나서서 우리도 다 먹고 있는데 왜 난리냐면서 정부 편을 든다.
정부에서는 엄청난 예산을 들여 미국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선전하고 있다.
30개월이 넘는 소도 SRM만 제거하면 아무 염려가 없다고 국민들을 설득한다.
마치 우리 정부가 미국 축산협회의 대변인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면 왜 미국인들은 20개월 미만의 쇠고기만 먹고 있는 것이며 일본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왜 20개월 미만의 쇠고기에 집착하는 것일까.
이 대통령은 우리나라 쇠고기가 너무 비싸다고 했다.
서민들도 이제 쇠고기를 먹을 수 있어야 된다고 했다.
일리 있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 환경이 축산에 맞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또 미국 소가 최근 광우병에 오염되지 않았으며 미국 쇠고기를 먹는다고 해서 광우병에 걸리지는 않는다는 것도 아직은 맞다.
그러나 미국에도 거의 먹지 않는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를 굳이 수입할 필요가 무엇인지에 대한 해명은 없다.
우리 식문화를 감안할 때 왜 광범위하게 특정위험부위를 허용했는지에 대한 국민적 의구심은 그 어떤 설명에도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 협상은 입이 열 개라도 잘못된 것이 사실이다.
이 대통령은 느닷없이 미국에 광우병이 발생하면 미국 쇠고기를 수입금지하겠다고 나섰다.
협상문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GATT 제 20조를 원용하겠다는 설명도 따랐다.
GATT의 조항까지 숙지하고 있으면서 광우병이 발생해도 우리 정부가 미국 쇠고기 수입을 왜 막지 못하도록 했는지 도무지 그 속내를 알 수가 없다.
하긴 미국에 광우병이 발생했는데도 미국 쇠고기를 사먹을 우리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 해도 이 문제만은 협상에서 분명히 못질해야 될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모든 권한을 미국에 내주었다.
도대체 이 대통령과 정부는 무엇이 이리 급했던 것일까.
기실 한미FTA 비준동의 때문이라고 한다.
혹자는 거기에다 지난 10년 소원해진 한미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선물이라고도 한다.
이 대통령은 부시 정부에서 비준 동의를 마치고 싶었을 것이다.
그 배경에는 한미 FTA가 우리의 살 길이라는 확신이 깔려 있다.
그러나 한미 FTA의 내용도 1차 산업은 물론이고 서비스 산업을 포함한 산업 전반에 많은 우려가 존재한다.
더욱이 국가소송제도는 한미FTA의 최대 맹점이다.
한미관계 복원에는 미국에게도 책임이 있다.
미국은 전략적유연성 정책으로 인해 한미연합사를 해체하는 합의를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공짜로 받아냈다.
북한과의 핵폐기 협상도 우리가 아니라 미국이 틀어쥐고 있다.
김정일이 달랑 영변 원자로 가동일지 등의 보고서만을 주고 농축 우라늄에 대해서는 얼렁뚱땅 하는데도 부시는 북한과의 협상을 적당히 끝낼 심산이다.
공은 명백히 우리에게 있지 않고, 레임덕에 걸려 있는 미국과 통미봉남(通美封南)을 외치는 북한이 넘기고 받고 하는데 우리는 그저 미국의 처분만 바라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미국에게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미국의 선심을 믿으면서 다 내 주었다.
이 문제만은 아마 참모들의 생각보다 이 대통령의 생각이 모든 것을 결정했을 것이다.
시대와 국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없는 단순한 경영자적 사고는 이런 오류를 낳게 된다.
아마도 이 대통령의 경영자적 사고는 쇠고기 협상뿐 아니라 앞으로 모든 국가정책 결정에 치명적인 오류로 작용할 것이다.
이러니 야당이 들고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고 당연했다.
야당은 재협상을 요구하는 한편 미국 쇠고기 수입을 막는 특별법을 제정하자는 엉터리 같은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재협상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닌데 야당은 하나 같이 재협상을 주장하니 이 또한 다분히 정략적인 주장이다.
정부가 야당의 이런 정략적 주장을 지렛대 삼아 미국의 양보를 받아내지도 못할 것이다.
기껏 '위험하면 안 먹으면 될 것 아니냐'는 식의, 국민들 부아만 지르는 말밖에 하지 못하는 이 정부가 그리 고단수(高段手)의 전략을 구사할 것 같지 않은 것이다.
촛불 집회에서는 10대의 아이들이 넘쳐난다.
절반이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다.
'나는 아직 15년밖에 살지 못했다'는 선정적인 구호들이 난무한다.
어린 아이들이 미국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희한한 공포에 빠져드는데도 야당 정치권의 어느 누구도 그 점은 과장되었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은근히 촛불 집회를 부추긴다.
촛불 집회의 배경에는 이미 진보좌파의 여러 활동에 나섰던 많은 단체들이 가세하고 있다.
왜 우리의 어른들은 아이들이 정치적 광장으로 내몰리는 것을 막지 않는 것일까.
왜 아이들까지 정치적 흥정에 철저히 이용하고 있는 것일까.
이 대통령의 정책이 잘못되었고 그것이 독선과 오만에 기인했다 하더라도 아이들을 광장으로 나오게 해서는 안된다.
그 광장은 어른들의 광장이지 아이들의 광장이 결코 아니다.
이 문제는 어차피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책임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혹 있을지 모르는 미국의 '광우병' 쇠고기로부터 국민을 안전하게 지키는 방책을 찾아야 하지 않는가.
쇠고기 유통 시장에 철저한 생산지 표시를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월령표시를 강화하여 30개월이 넘는 쇠고기의 유통을 실질적으로 막아내야 한다.
미국내 도축 현장을 수시로 확인하여 병든 소가 이 나라의 식탁에 오르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해야하는 것도 마땅히 할 일이다.
그리고 미일간의 쇠고기 협상등을 지켜보면서 재협상의 돌파구를 열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여야가 합심하여 국민들을 광우병 공포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그럴려면 이 대통령이 먼저 잘못을 시인하고 국민에게 미국 쇠고기 수입에 대한 진솔한 설명이 앞서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던 없었던 이런 엉터리 협상을 한 농림부 장관은 그 자리를 떠나야 한다.
미국 소에 우리 대통령이 더 이상 끌려다니는 건 여당과 대통령만의 불행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의 불행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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