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편집국장 고 하 승

시민일보

| 2008-07-13 15:33:50

전 세계를 통틀어 이명박 대통령처럼 정치를 모르는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정치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번번이 타이밍을 놓쳐 여론의 몰매를 맞고 있다.

지난 11일 우리 측 금강산 관광객이 북의 초병에 의해 살해되는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1시30분경 이 같은 사실을 보고 받았다.

그리고 50분여분 뒤인 2시 20분경에 MB는 국회의사당 연설대에 올라섰다.

MB는 당연히 북측에 강도 높은 유감을 표명하고, 항의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옳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오히려 MB는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대북 협의 확대제의'를 발표하고 말았다.

이른바 김대중의 6.15선언과 노무현의 10.4 공동성명의 이행을 위한 회담을 제의한 것이다.

물론 큰 틀에서 보자면 남북대화는 항시 전면적으로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

하지만 대화제의 시점이 적절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도 잘못됐다.

실제 이 대통령은 이날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 등 과거 남북간 합의를 어떻게 이행해 나갈 것인지 북측과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면서,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식량지원을 재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어떻게 한 국가의 대통령이라는 자가 불과 몇 십분 전에 자국민을 피격한 북측에 대화를 제의하고, 식량을 지원하겠다고 말 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과연 이런 사람이 대통령 자격이 있기나 한 것인가?

특히 이 대통령은 이날 ""우리 사회는 무형의 사회적 자본인 신뢰의 축적이 크게 부족하다""며 ""법과 질서가 바로서지 않으면 신뢰의 싹은 자랄 수 없다""고 ‘신뢰’를 강조했다.

물론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과연 MB가 국민들 앞에 ‘신뢰’라는 단어를 거론할 자격이 있느냐는 점이다.

MB는 지난 7.7 꼼수개각을 통해 ‘스스로 나는 신뢰 없는 사람’임을 입증하지 않았는가.


이미 국민들의 '신뢰'를 상실한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에게 유임이라는 방식으로‘검’자 인증마크를 붙여 준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다.

더욱 가관인 점은 청와대 측이 대화제의 연설을 강행한 데 대해 ""사안의 정확한 진상이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의 큰 정책 방향을 밝히는 연설을 즉흥적으로 바꿀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의 위기상황에서 50분이라면 상당히 긴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아무 대응도 하지 못했다면, 이는 무능한 정부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나라를 말아먹을 정부 아닌가?

북한군에 의해 국민이 희생된 상황에서 대통령이 북한에 대화 재개를 제의한 것은 아무리 그 명분이 타당하다고 하더라도 국민정서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이명박 대통령은 이 문제에 관한한 즉시 대국민사과를 하고,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혀야 한다.

문제는 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문 발표가 너무 잦아 이제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실제 MB는 '광우병 파동'이 확대돼 가던 지난 5월 22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국민들 사이에 퍼지고 있는 광우병에 대한 우려를 한낱 '괴담'으로 치부했다가 더욱 큰 반발을 불러 일으켰고, 급기야 6월19일 또 다시 국민들 앞에 고개를 숙여야만 했었다.

따라서 이제 또다시 꾸민 앞에 머리를 조아려도 믿을 수 없게 됐다.

아마 국민들 대다수가 다음에는 또 무슨 큰일을 저지르고 머리를 조아릴까하고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정치를 모르는 아마추어라면, 아는 척 하지 말고 차라리 정치를 잘 아는 사람을 국무총리에 임명하든지, 대통령실장에 임명해 부족한 면을 채우는 게 어떨까?

거듭 말하지만 정치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촛불이 처음 켜졌을 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말처럼 국민 앞에 납작 엎드리고 쇠고기재협상을 추진했더라면 100만 촛불시위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때를 놓쳐 여론의 몰매를 맞는 것이다.

이번 남북대화 제의 역시 적절한 타이밍이 아니다.

지금은 오히려 북측에 강력항의하고 사건의 재발방지를 약속받을 때까지 식량지원은 없다는 의지를 확실하게 전달했어야 옳았다.

남북대화 제의는 필요하지만, 하필 그 때 해야 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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