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쉬우면 재미없어 어려운 장르 찍었다”

‘님은 먼 곳에’ 전쟁, 멜로, 음악영화 사이 혼란

시민일보

| 2008-07-20 19:30:30

2003년 그가 영화 ‘황산벌’을 연출한다고 했을 때 영화계의 반응은 ‘글쎄요’였다. 충무로의 중견영화사 대표였지만 영화 연출경험은 1993년 어린이 영화 ‘키드캅’이 전부였다.

그런데 황산벌이 흥행에 성공했다. 당시 흥행 비결은 ‘갈급함’이었다.

이 감독은 “외화수입을 10년 가까이 했는데 빚이 많아졌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심정으로 황산벌을 직접 찍게 됐다. 죽기 살기로 찍었다”고 기억했다.

황산벌은 출발에 불과했다. 차기작 ‘왕의 남자’는 1000만 관객을 넘어서며 한국영화 흥행 신기록을 세웠다. 곧바로 ‘라디오 스타’를 또 흥행시켰다. 영화에 크게 감동했다는 이들이 많았다.

다음 작품 ‘즐거운 인생’에 이어 24일 개봉하는 ‘님은 먼 곳에’까지 거듭 극찬을 받고 있다. 이렇게 영화를 잘 찍는 감독이었던가, 한 때 미심쩍어 하던 시선들은 확신으로 돌아선 지 오래다.

이 감독은 그 흔한 영화연출부 생활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스타감독이 됐다. 영화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과거 외국영화를 수입하던 시절, 자막 없는 영화를 1000편 이상 봤다. 말을 못 알아들으니 영화의 신과 커트를 외워버렸다.

머릿속에 영화의 구도가 완벽하게 들어가 있다. 제작현장에서 콘티를 볼 필요도 없다.

이는 효율성으로 이어졌다. 영화에 들어갈 장면만 찍는다. 편집도 간단히 끝나고 제작비도 절감된다.

‘님은 먼 곳에’는 블록버스터급 위용을 자랑하지만 제작비는 70억원에 불과하다. 200억원 가까운 돈을 쓰며 촬영장면 대부분을 들어낸 경쟁영화의 방만한 제작행태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한 때 ‘님은 먼 곳에’는 정체성을 의심받았다. 전쟁영화와 멜로영화, 음악영화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했다. 이 감독은 “일부러 어려운 장르로 찍었다. 쉬우면 재미없다. 난이도가 굉장히 높은 시나리오다. 줄거리 설명이 한 눈에 안 된다”고 설명했다.

“나는 삼각함수를 풀었는데 평단은 2차 방정식을 대입하더라”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 감독은 ‘인간관계’에서 영화의 밑천을 찾는다. “모든 인간은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이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서 일어나는 충돌이 드라마가 된다.

드라마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간에 있는 것”이라는 형이상학이다. 그의 영화가 감동적 울림이 특히 큰 이유가 설명된다.




주인공 ‘수애’가슴 울리는 연기 감동
“여자의 본능으로 연기하라 했다”

여배우 수애(28)는 ‘님은 먼 곳에’를 통해 일취월장했다. 가슴을 울리는 연기를 했다. 이 감독도 “수애가 연기한 순이에게 많이 배웠다”고 인정했다. 연기지도 비법은 “여배우의 말을 잘 들어주면 된다”고 짧게 답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역시 철학이다. “여배우를 여자가 아닌 인간으로 봤다. 감정을 알려고 하지 말고 여자의 본능으로 연기하라고 했다. 연기라는 상황에 대한 믿음이다. 캐릭터의 심정으로 앉아있으면 저절로 나온다.” 또 “제일 못하는 연기는 연기한다는 것을 들키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배우가 캐릭터에 빙의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준익 감독은 “지금도 머리 속에 수백 개의 시나리오가 떠돌고 있다. 빨리 영화를 찍고 싶어서 안달이 날 정도”라며 의욕을 숨기지 못한다.

늦깎이 감독이 눈에 불을 켜고 영화연출에 달려들면서 한국영화계가 풍년가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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