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이 학교를 아예 사버렸다

하재근 (문화평론가)

시민일보

| 2008-07-27 18:34:03

사교육업체 대교가 명지외고를 인수했다. 대교는 은평뉴타운에 자사고 설립을 추진해왔다. 은평뉴타운 자사고는 대통령의 고려대 동창이 회장으로 있는 하나금융지주에게 넘어갔다. 자사고 설립이 무산되자 특목고 인수로 방향을 튼 것이다.

하나금융지주가 아니었어도 대교에게 자사고가 넘어가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반발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대교는 유명한 사교육 자본이다. 단순히 말해서, 학원에게 어떻게 학교 소유권을 주나? 국책은행을 사채업자에게 넘기는 격이다.

이런 이유로 대교의 자사고 설립은 좌절됐다. 그런데 특목고 인수는 소리 소문 없이 진행됐다. 이것은 상징적인 사건이다.

공교육 파탄 - 사교육 폭발 시대를 상징하는 황당한 사건. 먼훗날 한국의 교육이 정상화 된다면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당시의 후진성을 상징하는 사건들로 회자될 것이다.

영리를 추구하는 일반회사에게 자사고라는 학교를 맡겨 자유경영하게 하더니, 급기야는 교육으로 돈을 버는 사교육업체에게 학교가 넘어간다. 원래 교육은 영리추구와는 상극의 관계다. 교육은 전 국민에게 제공되는 공공복지에 속하고, 헌법상의 권리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것으로 영리를 추구하는 건 말이 안 된다. 국민에겐 누군가에게 이익을 발생시키지 않고도 교육 받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영리의 영역은 야금야금 교육의 영역을 침범해왔고, 영리 원칙의 사교육이 주권 원칙의 공교육을 압도해 완전히 포식해버리는 데까지 이른 상징적 사건이 대교의 학교 인수 사태라고 할 수 있다.

어처구니없는 건 이런 변화를 이명박 정부가 ‘교육 경쟁력 강화’로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데 있다. 단언할 수 있다. 이건 국가 교육의 와해지 경쟁력 강화 따위가 아니다.

대교는 특목고 전문 입시학원인 ‘페르마 에듀’를 가지고 있다. 특목고와 특목고 대비 학원을 동시에 운영하는 ‘초 문어발 교육재벌’이 되는 것이다.

한국은 입시경쟁사회다. 일류학교의 가치는 무한하다. 특목고는 일류학교다. 일류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 입시경쟁이다. 그 경쟁을 위해 구매하는 서비스가 사교육이다. 한국인으로 태어난 이상 싫건 좋건 이 구조로부터 벗어날 길은 없다. 국민이 볼모로 잡혀 있는 상황이다.

사교육업체가 일류학교를 장악하게 되면 볼모로 잡힌 국민은 울며겨자먹기로 주머니를 털게 된다. 일류학교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계열 사교육기관의 가치가 상승할 것이다. 애타는 학부모들은 그 학원에 학생들을 들여보내게 되고 하다못해 문제집이라도 구하려 발을 동동 구를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학교자율화로 각 학교에게 무제한의 자율권을 주려 한다. 학교를 가진 사교육업체가 학교운영을 자사 학원 마케팅에 동원할 가능성은 매우 농후하다. 사교육업체에 유리한 전형, 사교육업체의 선행학습에 유리한 학습내용, 혹은 정보 미리 빼돌리기.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는 일이고, 자율경영 속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되면 첫째, 사교육업체의 영리행위에 교육이 놀아나는 사태이기도 하지만, 둘째, 사교육 재벌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시장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벌어질 교육시장의 변화가 바로 이것이다. 사교육은 이전에도 이미 팽창해있는 상태였다. 이명박 정부에선 그 중에서도 대자본 중심으로 시장이 구조조정되는 일들이 벌어질 걸로 예상된다.

이때 학교를 소유한 자본은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어느 사교육 자본이 서울대를 소유하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해보라. 그 영향력은 시장에서 가히 파괴적일 것이다. 특목고 소유도 제한적이지만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일부 특목고와 사교육업체의 유착은 그동안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어왔다.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추성훈도 특목고 문제유출에 대해 황당해하는 발언을 했었다. 한국사회만의 병폐다. 사교육 자본의 특목고 인수, 즉 유착을 넘어선 ‘합체’는 이 만성질환을 치명적인 수준까지 키울 가능성이 크다.

대자본들의 학교경영권 탈취, 영리추구 행위가 가속화되면 한국 교육은 정말로, 명실 공히 붕괴할 것이다. 학교가 돈벌이 수단이 될 때 돈벌이를 시켜주지 못할 아이들, 즉 없는 집 자식들은 점점 더 좋은 학교로부터 배제당하고 돈 많은 집 자식들만 우대받게 된다. 나라꼴은 ‘개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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