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기념일의 의미
전원책 (변호사)
시민일보
| 2008-08-10 18:58:04
8월 15일은 광복절이다. 1910년 8월 29일 한반도가 일본에 강점(强占)되었다가 36년 만에 해방된 날이다. 그리고 이 나라가 민주공화국으로 출범한 날이다.
일본의 강점은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불법행위다. 따라서 독립(獨立)이라든가 해방(解放)이라는 용어보다는, 국권회복이라는 의미의 광복(光復)이라는 용어를 쓴 것은 옳았다. 그리고 광복된 1945년 8월 15일 이전이나 더 나아가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 이전의 한반도는, 국가가 부활되지 못한 상태로서 '정부를 아직 수립하지 못한' 대한민국의 영토이다. 1919년 4월 11일 상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세워졌으나 '국민과 영토'는 있되, 주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지 못한' 임시정부였다.
마침내 1948년 8월 15일 정부가 수립되었다. 영토 국민 주권을 가진 명실상부한 국가로서 대한민국이 출범한 것이다. 이 대한민국은 한반도 최초이자 유일한 공화정(共和政)이다. 그동안 8월15일을 광복절로 경축하면서 정부수립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았다. 많은 나라가 공화정의 시작을 건국일 혹은 독립기념일 등의 이름으로 기리는데도 우리는 8월15일을 광복의 의미로만 두고 있었다. 더욱 이상한 것은 7월17일을 제헌절로 하면서도 건국기념일을 두지 않은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8월15일을 두고 건국기념일로 하자는 논의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그러다 최근 이 문제가 다시 제기되자 진보좌파 진영 등에서 여러 비판이 나오고 있다. 대개 그들의 주장은 논리의 출발점이 잘못된 것이다.
첫 째, 대한민국 정부는 남한의 단독정부로서 통일 전의 과도기적 정부라거나 한반도 혹은 한민족 유일의 정부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임을 부인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김구 선생과 같이 대한민국이 임시정부를 계승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에서부터, 북한이 유엔에 가입한 '우리와 대등한' 실체적인 국가이니 통일국가가 아닌 남한만의 '건국'은 무의미하다는 주장까지 여러 주장이 있다. 이는 명백히 반헌법적(反憲法的)인 주장으로 논박할 가치조차 없다. 이런 주장은, '대한민국의 건국'이라고 기술하지 않고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이라고만 기술한 역사교과서의 태도와 맥을 같이 한다.
둘 째, 건국기념일 제정은 대한민국에서 북한을 배제하게 되어 분단체제를 영구화한다는 비판이다. 이 역시 우리 헌법에 배치되는 주장이다. 헌법은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하고 있는 바, 북한은 반국가단체에 불과하고, 북한 지역은 미수복지역이다. 북한은 통일의 대상으로서 반드시 회복하여야 할 실지(失地)인 것이다.
셋 째, 일제강점기를 근대화시기로 보는 식민지근대화론과 이승만 건국론, 박정희 산업화론 등 '뉴라이트' 계열의 역사인식에 의해 건국기념일을 제정할려 한다는 비판이 있다. 8월15일을 광복절이 아닌 건국기념일로 하자는 것은, 일제의 지배를 칭송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유린한 독재자를 찬양하는 친일건국세력과 그 후손인 산업화 세력들의 역사인식이라는 것이다. 한겨레신문은 사설에서 광복이 두려웠던 친일반민족세력은 독재정권의 비호를 받으며 민족 민주 자주정신을 유린하여 왔는데 이제 정부수립일을 버리고 건국을 강조하는 것은 이들과 동류라고 쓰고 있다.
민주당의원들을 비롯한 69명의 의원들이 '건국절 제정은 일제에 의한 침략과 이에 끈질기게 저항한 우리 민족의 항일투쟁 등 이전의 대한민국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며 특히 항일 독립운동가들의 명예를 더럽히는 반역사적 행위이자 대한민국임시정부 법통 계승의 참된 의미를 짓밟는 반헌법적 행태'라고 비난한 것 역시 같은 기조에 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오늘날까지 친일파 후손들이 득세하고 있다거나, 친일 항일 간의 갈등이 후손들에 계속되고 있다는 인식이 그것이요, 건국 당시 친일을 청산하지 못한 연유로 친일세력이 건국하고 산업화세력은 그 후손들이라는 인식이 그것이다. 즉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자신들의 죄상을 파묻기 위해 건국기념일을 제정하여 광복절의 의미를 퇴색시키려 한다는 주장이다.
참으로 얼토당토않은 비판이다. 광복 후 63년이 지난 지금, 일제강점기 때 성년자(成年者)들은 대부분 사망하고 없다. 그런데 그 무엇이 두려워서 '친일파'들이 살아 암약하여 이런 말도 안 되는 음모를 꾸민단 말인가. 오히려 민족의 자존심 상 일제강점기를 기억하기 싫어서라도 광복절보다는 건국기념일을 내세워야 할 것이 아닌가. 이런 주장은 해방 후의 정치인 중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이 가장 반일 노선에 섰다는 것만으로도 힘을 잃는다. 더욱이 박정희 시대 경제개발의 주역을 친일파와 그 후손들로 규정한 것은 일본군 중위 출신인 박정희를 매도하기 위한 방편으로, 아무런 근거조차 없는 허무한 주장에 불과하다. 개발시대의 관료나 경제인 중에 친일파와 그 후손이 누구인가.
심지어 한나라당의 원희룡 의원은 8월 15일을 건국기념일로 하면 역사가 단절되거나 위축될 수 있다면서 독도의 영유권도 말하지 못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한다. 대한민국이 고조선부터 면면히 이어져온 한민족의 역사를 계승한 것을 몰각한 주장이다. 프랑스가 공화정의 연원인 혁명일을 건국일로 하였다 하여 그 이전의 역사는 프랑스의 역사가 아닌 것인가.
이 문제는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관련되어 있는 문제이고 대한민국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의 문제이지 친일 반일의 문제로서 과거사와 연관될 그 어떤 이유도 없는 것이며, 더욱 한반도와 한민족의 역사에서 우두커니 대한민국만 단절하자는 것은 아닌 것이다. 건국기념일 제정은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라는 것과 대한민국이 한민족 최초의 민주공화정인 것을 기리자는 것이다.
한편 건국기념일 제정 반대의 이유로, 대한민국이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였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헌법 전문(前文)에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하여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이 '법통의 계승'이란 말을 두고 '나라의 연속'으로 본다면, 임시정부 제헌일인 1919년 4월11일이나 그 전일인 임시의정원 개원일 4월10일을 건국일로 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올해가 개국 89주년이 된다. 실제 임시정부 기사록에는 1919년을 대한민국 원년이라 하였으니 이 주장에는 상당한 논거가 있는 셈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 자신이 제헌의회 연설에서 '임시정부의 계숭'을 밝히고, '민국(民國) 29년 만에 부활되었기 때문에 대한민국 30년에 정부수립이 이루어졌다'고 하여 '법통의 계승'을 강조한 바가 있다.
그러나 헌법 전문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표현은 어디까지나 나라의 정통성을 드러낸 것으로서, 임시정부의 성립이 곧 건국이라고 본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이어받았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1948년 8월15일에 이르러 대한민국은 비로소 영토와 국민 그리고 주권을 가진 완전한 국가로서 출범하였던 것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도 1949년 3.1절 담화에서 '우리가 지금 건설하는 민국은 탄생한 지 아직 1년이 못되었다'고 하였고, 1951년 8월15일 기념사에서 '민국독립기념일'이라고 하여 8월15일을 독립기념일로 보았다.
제헌헌법 전문은 조금 다르다.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이라고 하였는 바, 제헌헌법은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국가를 재건'하였음을 천명한 것이다. 따라서 제헌 당시의 생각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것이 곧 그 이념과 정신을 계승한다는 뜻인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 독립국가를 재건한다는 것도 한민족의 독립된 국가로서의 출범을 뜻하는 것이지 '대한제국을 재건한다'는 의미는 아닌 것이다.
한편 지금까지 진보좌파 성향의 학자들이나 김구 선생의 추종자들은 대한민국은 임시정부를 계승하지 않았다고 해 왔다. 김구 선생 자신이 1948년 6월 7일 기자회견에서 '현재 국회 형태로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지 않은 것'이라며 의분을 느낀다고 하면서 강력한 통일운동을 추진하겠다고 하였다. 그는 1949년 사망 때까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임시정부를 계승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견지한 것이다. 이제 이 분들이 느닷없이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것이니 8월 15일이 결코 건국일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건국기념일 제정을 반대할 명분을 위해 말을 바꾼 것에 불과하다.
일부 학자들은 1919년 임시정부나 1948년 제헌국회의 정부수립 문건 어디에도 '건국'이라는 말이 없으므로 임시정부든 대한민국 정부든 나라의 부활로 보아, 임시정부 개원일이나 8월15일을 건국기념일로 해서는 안 되고 어느 쪽이든 정부수립일로 하여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도 건국의 의미를 민족이 처음 나라를 여는 뜻으로 협의(狹意)로만 해석하여 가당치 않다. 그렇다면 우리의 건국일은 단군조선의 개국일인 상원갑자(上元甲子)년 음력 10월3일에 기인한 개천절인 것인 바, 단일왕계의 일본 같은 예를 제외하면 오늘날 민주공화국가가 과거 왕국의 개국을 건국일로 하는 예가 없다.
세계의 민주공화국들은 대개 건국기념일을 가지고 있다. 그 대부분은 공화정의 시작일이거나 식민지로부터 독립한 날이거나 혹은 독립을 선언하여 정부 조직이 출범한 날이다. 중국도 1948년 9월 10일을 건국절로 하고 있고 심지어 북한도 9월 9일을 건국일로 하고 있다. 우리 헌법상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요 민주공화정체를 가진 나라로서 8월 15일을 건국기념일로 하여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 당연한 일을 부정하면 국립묘지는 그 의미를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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