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30년대 미국과 뉴딜의 진실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시민일보
| 2008-08-17 17:34:36
우리에게는 언제부터인지 1920년대 미국은 무부별한 투기와 탐욕의 시대였고, 그 결과로 대공황이 발생했으며,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으로 미국 경제가 공황을 극복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마도 정부 주도로 도로, 댐, 발전소 등을 건설해서 조국 근대화를 추구했던 박정희 정권이 그러한 정부 주도의 개발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뉴딜을 과장했던 것 같습니다.
‘위대한 개츠비', '분노의 포도' 같은 소설-영화도 그런 인식이 퍼지게 하는데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개츠비 식의 자본주의 탐욕'이 '분노의 포도'에 그려진 농촌의 파멸을 초래했다는 인식을 전파시킨 것이지요. 그런 결과로 자유방임주의 경제정책을 기조로 한 공화당이 대공황을 초래했고, 케인즈 식의 경제정책을 편 민주당이 공황을 극복했다고 알려지게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게 되면 그것과는 정반대의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1920년대 미국은 전에 없던 호황을 누렸던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1920년 미국 경제발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인물은 재무장관을 오래 지낸 앤드루 멜런(Andrew Mellon)입니다, 우리나라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지요.(얼마 전 '마지막 강의'란 진한 감동을 남기고 사망한 포쉬 교수가 재직했던 카네기 멜런 대학의 '멜런'이란 명칭이 알려져 있을 것입니다.)
앤드루 멜런은 멜런 은행, 알코아(세계 최대 알루미늄 회사), 걸프 오일 등의 굴지의 기업을 일으킨 미국의 재벌 창업자입니다. 그는 세금을 줄여야 경제가 성장한다고 믿었으며, 상속세와 증여세가 나쁜 세금이라고 주장한 사람이었습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경제정책의 뿌리는 멜런인 셈이지요. 그는 당시의 실정법이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법을 잘 지킨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정적인 루스벨트가 집권 후 멜런을 탈세 혐의로 샅샅히 조사했지만 아무런 흠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멜런은 고향 피츠버그에 멜런 연구소를 세워서 기술개발에 기여했습니다. 멜런 연구소가 카네기 공대에 합병되어서 오늘날 카네기 멜런 대학이란 명문 대학이 탄생한 것입니다. 멜런은 대단한 미술품 수집가였습니다. 그는 유럽의 미술품을 사들였는데, 자신의 모든 수집품을 미국민들에게 환원했습니다. 그는 미술품뿐만 아니라 자기 돈으로 미국을 대표하는 국립미술관을 지어서 기증했습니다. 그는 미술관의 준공을 보지 못하고 사망했지만, 그의 아름답고 위대한 기부행위로 나 같은 외국인도 워싱턴을 방문할 때 그 대단한 미술관을 방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워싱턴의 연방정부 건물을 아름다운 네오 클래식으로 건축했습니다. 아름다운 워싱턴 중심가는 멜런이 남긴 위대한 유산입니다.
우리나라의 재벌들이 만든 미술관은 대개 상속세를 편법으로 덜 내면서 막대한 부를 대물림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과 비교가 됩니다. 멜런의 일생은 자본주의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나를 잘 보여줍니다. Book World에 살린 데이비드 캐나다인이 지은 '멜런'은 800쪽이나 되는 앤드루 멜런의 전기입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Book World에 오른 아미티 쉴래이스가 지은 '잊혀진 사람'은 작년에 나와 화제를 일으킨 책입니다. 뉴딜이 얼마나 허구에 가득 찬 정책인지를 잘 파헤친 책입니다. 쉴래이스의 책을 보면 멜런과 뉴딜주의자들이 잘 비교되어 있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노무현 정부는 수도이전을 추진하면서 수도이전이 뉴딜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진보주의를 표방한 정부이니까 그렇게 주장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수도이전하면 뉴딜처럼 경제가 좋아진다고 주장하는 것은 물론 잘못입니다.
지난 대선에 이명박 캠프에서는 대운하 사업이 '뉴딜'이라고 둘러 댔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습니다. 3면이 바다이고, 내륙에 고속도로가 거미줄 같이 깔려 있는, 산맥이 많은 작은 나라에 19세기의 산물인 운하를 파겠다는 것은 그 자체가 황당한 발상입니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는 명색이 '보수'를 표방하는 모양인데, 무슨 '보수정권'이 '뉴딜'을 표방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대운하가 '뉴딜'이라는 황당하고 무식한 주장을 하다가 '촛불'에 혼이 나서 그 소중한 공약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는 이상한 단서가 붙어 있지만 말입니다. 한나라당 의원과 뉴라이트인지 뭔지 하는 데 속한 교수가 '촛불'은 '중우정치'이고 '천민민주주의'라고 막말을 퍼부었지만, 그토록 '어리석은 국민'도 대운하가 말도 안 되는 것임을 잘 아는 것입니다.
Book World에 올라 있는 '잊혀진 사람'과 '앤드루 멜런'을 통해 뉴딜의 진실을 이해하고, 나아가 우리나라 정치의 ‘수준'을 가름해 보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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