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은 현실이 됐지만, 원작속 철학 없었다

日 영화 ‘20세기 소년’ 베일 벗어

시민일보

| 2008-09-03 19:02:40

만화 명장면 그대로 재현
원작 모르면 이해 어려워
오는 11일 국내 개봉



일본의 국민만화가 우라사와 나오키(48)의 묵시록적 대작 ‘20세기 소년’이 21세기 들어 마침내 스크린으로 옮겨졌다.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이 대형프로젝트는 츠츠미 유키히코(52) 감독에 의해 현실이 됐다. 원작의 팬들은 만화 속 명장면들을 영화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격에 겨워할 수 있다. 그런데, 상상 그 이상의 것은 없다.

츠츠미 감독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원작에 집착했다. 만화 장면들을 오려 붙여 그대로 콘티에 사용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영화는 만화를 똑같이 따라 그리려고 노력했다.

‘트릭’등의 영화로 ‘츠츠미 월드’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보여준 감독의 개성을 영화 ‘20세기 소년’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그림은 영상으로 재현됐지만, 원작의 묵직한 철학까지는 스크린으로 옮겨오지 못한 듯 하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는 원작의 혼란스러운 시점을 따라가는 데 급급하다. 원작을 읽은 이들은 쉽게 이해하겠지만, 원작을 전혀 모른 채 극장을 찾은 이들은 당황스러울 수 있다. 난해한 구조다.

1960~70년대의 아련한 추억에 잠기게 할 어린 시절 장면들은 세피아 톤이 강조된 색감으로 차별된다. 작품 전체의 주제를 관통하는 비밀기지와 예언의 서 등이 등장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더불어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남성주간지 ‘헤이본펀치’, 만화잡지 ‘소년선데이’등 사건과 소품들이 시대상황을 느끼게 한다. 소년들이 ‘울트라맨’동작을 흉내내며 비밀기지를 사수하려는 ‘한 컷’이 눈물겹다. 소년기의 추억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20세기 소년’의 결정적 재미는 ‘친구가 누구일까’라는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친구마크’의 존재를 알고 있는 코흘리개 어린이 가운데 한 명이 신흥종교집단을 이끌고, 세계정복을 노리는 교주의 ‘친구’가 됐다는 사실에 경악하며, 팬들은 그 정체를 찾아 나간다. 원작은 오초, 사다키요, 후쿠베 등 여러 캐릭터들을 번갈아 용의선상에 두며 보는이를 안절부절,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미 원작에서 결말이 난 만큼 영화에서는 이러한 추리적 흥미가 다소 반감된다.

원작 이미지 그대로 캐스팅된 중견배우들의 연기는 주목대상이다. 하지만 주연 가라사와 토시야키(45) 등 출연진은 일본내 명성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익숙하지 못한 이름들이다.

국내 흥행을 성공으로 이끌 스타파워가 좀 부족한 편이다. ‘성월동화’의 도키와 다카고(36)의 얼굴은 반갑다.

‘20세기 소년’은 일본 영화 단일 프로젝트 사상 최고액인 60억엔을 쏟아부었다는 사실이 무색할 지경으로 스펙터클 장면이 부족하다. 마지막에 거대로봇이 등장하기는 한다. 그래도 SF 블록버스터를 기대한 관객에게는 실망을 안길 수 있다.

또 3부작 기획이라 완성된 영화를 보지 못했다는 허전한 마음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 엔딩 크레디트가 끝나면 2부 예고편을 보여준다. 11일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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