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법 개정안, 이대로 좋은가
고하승 편집국장
시민일보
| 2008-10-06 16:34:34
이번에 개정된 지방자치법은 참 희한하다.
우선 지방의원들의 의정비 가이드라인(기준액)을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정부가 의정비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이유가 무엇인가?
과다책정 논란을 빚고 있는 지방의원 의정비를 규제하기 위함이다.
실제 당초 행안부가 확정 입법예고한 ‘지방자치법 시행령’ 개정안을 보면, 지자체 3년 평균 재정력 지수, 의원 1인당 주민 수 등이 반영된 계산방식에 의해 의정비 기준액을 산정하도록 했었다.
행안부의 이 같은 기준액을 토대로 산출한 결과, 전국 264개 지방의회 가운데 무려 189개 지방의회 의정비가 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지방의원들의 의정비가 상당 폭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별거 아니다. 지난 30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시행령 안이 크게 후퇴했기 때문이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새 가이드라인은 지방의원들의 월정 수당 산정 근거인 `전국 평균액과 지자체별 재정력 지수' 반영 기간을 `2006~2008년'으로 하고 있다. 이는 당초 가이드라인의 ‘2005~2007년'에서 1년 늦춰진 것으로 전국 평균액을 사실상 올린 셈이다.
특히 개정안은 각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월정수당의 범위를 ±10%에서 ±20%로 무려 두 배나 확대했다.
뿐만 아니라 의원들의 실비보전 차원에서 원격지의 경우 회의당일 교통비와 숙박비, 식비 등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결국 정부의 지방의원 가이드라인은 지난해 과도하게 높아진 의정비에 대해 삭감은커녕 오히려 정당성만 부여한 꼴이 되고 말았다.
실제 정부가 확정한 새 기준을 서울시의원이나 경기도의원들에게 적용하면 어찌될까?
서울시 의원의 경우 연간 의정비가 현재의 6804만원에서 6210만 원으로 줄어들기는 한다. 하지만 이는 당초 행안부가 마련했던 기준을 적용할 때의 5371만 원보다 104만 원 가량이 덜 줄어드는 것이다.
또 연간 7252만원을 받는 경기도의원의 의정비 상한액도 당초 안대로 하면 5680만 원까지로 크게 감소하지만 새 가이드라인을 적용하면, 6203만원까지 가능하게 된다.
특히 당초 입법예고됐던 안과는 달리 의장의 의정비심의위원 추천 권한이 부활됐고 출석위원의 3분의 2가 찬성하면 의정비심의위원회 회의도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는 단서 조항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쯤 되면 ‘무늬만 개혁’이라는 비아냥거림이 쏟아지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문제는 또 있다.
개정안에서 지방의원 유급화의 취지에 따라 성실한 의정활동을 보장하고, 부당한 영향력 행사 금지를 위해 겸직금지 대상을 확대시켰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말뿐이다.
실제 서울시의원들이 소관 상임위원회 직무와 연관된 영리행위를 금지하는 대신 직업과 관련된 상임위원회에서의 활동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6일 서울시의회에 따르면 박 모 의원이 최근 이같은 내용을 담은 '교섭단체 및 위원회 구성·운영 조례' 개정안을 동료의원 14명의 동의를 얻어 발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개정안은 기존 조례의 '의원은 자기 직업과 관련된 상임위의 위원이 될 수 없다'는 조항을 '상임위원은 소관 상임위의 직무와 관련한 영리행위를 못한다'로 수정, 직업 관련 상임위 활동을 허용했다는 것.
이 같은 개정안은 오는 9일 개회하는 제176회 임시회에 상정된다. 박 의원이 시의회 전체의석 106석 중 100석을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 소속 의원인 만큼 의결될 것이 불 보듯 빤하다.
물론 박 의원은 ""객관적인 의정활동을 담보하기 위해 소관 상임위원회의 직무와 관련한 영리행위를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미심쩍다.
아예 상임위 활동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직업 자체를 규제하는 것보다 훨씬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직업과 관련된 상임위 활동을 허용하는 것은 부패구조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행정안전부도 지난달 25일 지방의원 겸직금지 확대, 영리행위 제한 강화 등을 골자로 하는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바 있다.
이것을 조례로 무력화시킬 수 있다면, 개정안을 만드나 마나 아니겠는가?
물론 일각에서는 이번 정부의 개정안에 대해 “자치단체의 고유권한은 물론 지방의원 유급화에 대한 취지를 무너뜨리는 도를 넘은 간섭”이라는 반발도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공청회나 여론조사 등 국민 전체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쳤으면 어땠을까?
모쪼록 이명박 정부는 단 하나의 법률을 만들더라도 제발 ‘국민과의 소통’이라는 절차를 중시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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