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평화는 ‘박정희 꿈’이었다

편집국장 고 하 승

시민일보

| 2008-11-02 14:55:55

필자는 최근 북한 지식인들 사이에서 남한의 역대 대통령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우연히 그 내용이 기록된 모 대학보고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게 정말 북한 주민들이 내린 평가가 맞는가 하고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을 정도다.

우리의 왜곡된 역사적 인식보다 어쩌면 더 정확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선 그들에게 비쳐지는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은 어떤 모습일까?

그들은 ‘남조선 경제를 일으켜 세운 경제인, 미국에 아부하지 않은 자주적인 정치인, 그리고 북한과의 관계를 최대한 개선하려 애썼던 대통령’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남조선에서 박정희 시절의 경제는 꽃망울이 맺혔다’는 얘기도 자주한다고 한다.

물론 ‘독재자로서 자기 부하의 총에 저 세상에 간 불운의 사나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도 따른다.

반면 고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의 하수인’으로 그리고 전두환 대통령은 ‘무서운 폭군’으로 ,노태우 대통령은 ‘능력 없는 물에 물탄 사람’으로 형편없이 깎아내리고 있다.

이에 대해 보고서는 “이러한 북한 지식인들의 평가는 국내에서 꽉 막혀 있는 일반대중보다 더 객관적인 외부의 시각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결론을 내렸다.

일단 다른 대통령들은 그만두고라도,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그들의 평가는 가슴에 와 닿는다.

진중권씨 등 남한 지식인들 사이에서 고 박정희 전 대통령 ‘깎아내리기’를 영웅담처럼 들려주는 사람들이 많은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남한 지식인들 사회에서의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고 있기 때문에 다루기가 매우 조심스럽다. 오죽하면 내부에서조차 다른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에 대한 평가를 삼가는 것이 낫다는 소리까지 나왔겠는가.

이처럼 한 언론사 편집국장의 위치에서 박 전 대통에 대한 평가 문제를 공개적으로 꺼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그에 대한 재평가가 객관적으로 내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특히 필자는 그가 북한 지식인들로부터 ‘남북 관계를 최대한 개선하려 애썼던 대통령’이라는 호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고 있다.

사실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이나 모두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 경제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산업화의 영웅’이라는 데 대해서는 큰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양 진영 모두 그가 ‘유신 독재’로 민주화를 저해한 사람이라는 데 대해서도 싫든 좋든 서로가 인정하고 있는 마당이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 진영 모두 ‘남북관계 개선’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대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침묵하고 있는 것 같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박 전 대통령은 지난 1973년 6월 23일 이른바 ‘6.23 선언’이라고 불리는 ‘평화통일외교정책 7개항’을 발표했다.

7개 항목 가운데는 “조국의 평화적 통일은 우리민족의 지상 과업이다. 우리는 이를 성취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계속 경주한다”거나 “남북대화의 구체적 성과를 위하여 성실과 인내로써 계속 노력한다”는 조항 등이 담겨 있다.

이는 진보진영이 ‘남북관계 개선’, 혹은 ‘남북평화’라는 화두만 나오면 마치 자신들의 자산이나 되는 것처럼 의기양양해서 떠들고 있지만, 실상은 그들이 가장 적대시하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주요 업적이라는 점을 증명하는 중요한 자료인 셈이다.

어쩌면 진보 진영에서는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보수진영은 왜 이 문제에 대해 바보처럼 침묵하고 있는 것일까?

소위 아스팔트 우파단체의 ‘대북삐라’가 남북관계를 경색시키고 있는데도 왜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는 보수진영에서는 이를 말리지 않고 있는 것일까?

그가 살아생전에 남북 간 성의 있는 대화를 지속적으로 노력한다고 발표했는데, 보수 진영은 왜 그를 따르지 않느냐는 말이다.

이는 ‘남북관계 개선’이니 ‘남북 평화’니 하는 화두가 진보 진영의 것으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남북관계 개선과 남북평화야말로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던 가치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그 가치를 보수진영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북한 지식인들도 알고 있는 상식을 우리가 모른 데서야 어디 말이나 될법한 일인가?

거듭 말하지만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꿈꾸던 세상은 남북이 대립하는 세상이 아니라,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평화의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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