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치 혀끝’ 그 대통령에 그 장관

편집국장 고 하 승

시민일보

| 2008-11-09 12:43:16

이명박 정부는 ‘세치 혀끝’이 말썽이다.

지난 3일부터 7일까지 진행된 18대 국회 첫 대정부질문이 진통 끝에 마무리됐으나 영 뒷맛이 개운치 못하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헌재 접촉' 발언 때문이다.

실제 강 장관은 지난 6일 종부세와 관련한 헌재 판결 전망을 묻는 한나라당 최경환 의원의 질문에 ""우리가 헌재와 접촉했지만 확실한 전망을 할 수 없다""면서도 ""일부는 위헌 판결이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는 행정부서 장관이 독립성이 생명인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강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이번 대정부질문의 전체 성격을 규정지을 만큼 정치권에 거센 후폭풍을 일으키고 말았다.

그의 말 한마디로 인해 한나라당은 야당의 요구대로 국회 내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허용해야만 했다.

뿐만 아니라 남은 정기국회 기간 'MB 입법' 추진에 박차를 가하려고 했던 계획들도 모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강 장관 한 사람으로 인해 한나라당으로서는 겪지 않아도 될 홍역을 톡톡히 치르고 있는 중이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가 같은 날 긴급 기자간담회를 자청, ""강 장관의 부적절한 답변으로 국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한 점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사과한다""고 말하는 등 진화에 나섰으나 파문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강 장관의 발언을 ""국기문란, 헌정유린""으로 규정하고, 강 장관의 사퇴와 국회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등 강하게 압박하고 나섰다.

결국 한나라당도 강 장관의 헌재 접촉 발언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진상조사위 구성에 합의를 해 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문제는 이에 대한 강 장관의 태도다.

그는 지난 6일 국회 답변과정에서 헌법재판관을 만났다고 큰소리쳤다가 불과 하루 만에 자신의 발언이 문제가 되자, “헌법연구관을 만났을 뿐”이라고 말을 바꾸었다.

오죽하면 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은행지급보증도 필요 없다고 했다가 5일 만에 말을 바꾸는 등 갈팡질팡하는 장관을 어떻게 믿겠느냐”며 ""강 장관이 시장에 나타나면 '재수 없다'고 한다""고 독설을 쏟아 냈겠는가.

특히 강 장관은 그동안 ""헌재로부터 설명 요구가 있어 찾아간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헌재는 보도자료를 통해 ""헌법재판소는 기획재정부 측에 방문을 요청하거나 자료 제출을 요구한 사실이 없다""고 공식 확인했다.

이로써 강 장관의 해명이 모두 거짓이었음이 들통 난 셈이다.


강 장관의 발언 내용도 문제이지만, 이처럼 거짓해명으로 일관하는 그의 태도 역시 곱게 보이지 않는다.

사실 강만수 장관의 말 바꾸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취임 10개월이 채 안 됐지만 이미 여러 차례 구설수에 올랐다.

지난 4월엔 은행을 사실상 사기꾼이라고 몰아붙였다가 적지 않은 반발을 샀는가하면, 최근엔 금융위기와 관련해 몇 차례 말을 뒤집었다.

또 금융위기를 무리 없이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가 얼마 뒤엔 잘못 관리하면 경제위기로 갈 상황이라고 말해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러다 이번엔 제대로(?) 사고를 치고 말았다.

종합부동산세 위헌 여부에 대한 결정을 앞두고 헌재와 접촉했다고 발언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의 구설수를 참다못해 야당은 물론 시민단체마저 그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정책과 신념의 차이를 떠나 장관으로서 자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쯤 되면, 다른 정부 같았으면, 벌써 그를 아웃시켰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건재하다. 이유가 무엇일까?

어쩌면 ‘세치 혀끝’의 잘못은 잘못도 아니라는 인식이 이명박 정부 각료들 사이에 팽배해 있는지도 모른다.

이 대통령 자신이 경선 당시부터 장애인 비하 발언 등 숱한 설화(舌禍)로 물의를 빚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 대통령에 그 장관이라는 것.

그나저나 벌써 겨울이 성큼 다가섰는지,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우리 서민들은 올 겨울이 유난히 춥게 느껴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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