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논의기구, 與野 모두 틀렸다

편집국장 고 하 승

시민일보

| 2009-03-04 11:26:47

여야간 극심한 견해차로 갈등을 빚던 방송법 등 미디어 관계법 문제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지혜로운 말 한마디로 일단락 됐다.

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게 끝난 게 아니다.

앞으로가 문제다.

여야가 미디어 관계법을 100일간 사회적 논의기구에서 다룬 뒤 표결처리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실제 여야는 ‘사회적 논의기구’의 구성과 성격.역할 등을 놓고 계산기를 두드려 가며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기구를 구성하는 과정부터 진통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에 대해 여야는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산하의 자문기구로 두되 여야 동수로 추천한 이들로 구성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그런 면에서 큰 틀에서 합의는 이뤄진 셈이다.

하지만 미세한 부분에서 여야의 견해차는 너무나 크다.

그러면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미안한 말이지만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모두가 틀렸다.

구성에 있어서는 민주당이 틀렸고, 성격과 역할에 있어서는 한나라당이 틀렸다.

먼저 논의기구 구성을 보자.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동수(同數) 구성을 고집하고 있다.

다른 야당까지 들어오면 힘의 논리에서 밀릴 것이라는 예상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자유선진당과 창조한국당이 연합해 ‘선진과 창조의 모임’이라는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했고, 그들이 “빠질 수 없다”고 주장하는 만큼 그들에게도 당연히 일정한 몫을 주어야 한다.

즉 한나라당과 민주당 추천인 동수가 아니라, 여야 추천인 동수가 돼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민주당은 논의기구에 정치인을 포함시키려 하지만, 그것은 옳지 않다.

‘정치적 논의기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회적 논의기구’다.

따라서 정치인을 배제시키는 게 맞다.

특히 정치인들을 포함시킬 경우, 여론수렴 등의 업무수행과정에서 정치적 논리 혹은 정파의 논리가 개입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 구성원이 몇 명이든 여야 동수로 구성하되, 100% 외부인사들로만 이뤄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논의 기구의 성격과 역할을 보자.

이것은 한나라당이 틀렸다.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은 여야 합의문에 “자문기구인 사회적 논의기구를 만들고”라고 돼 있는 사실을 거론하며, “합의문에 ‘자문기구’라고 적시된 만큼 자문만 하면 된다. 의결권은 당연히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논의기구에서 어떤 결과가 도출되든, 단순히 ‘자문기구’이기 때문에 나중에 그것을 받거나 혹은 상황에 따라 수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건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논의기구’를 무엇 때문에 만든 것인가.

단순히 100일 동안 시간이나 벌자는 속셈이라면,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항간에 한나라당은 100일만 능구렁이처럼 참다가 자기들 법안대로 표결을 강행처리하고야 말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당연히 사회적 논의기구에 힘이 실려야 하고, 국회는 그 결과를 권위 있게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자세를 가져야 한다.

즉 단순한 ‘자문기구’가 아니라 권위 있는 ‘논의기구’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문제가 매듭지어 지지 않은 상태에서 논의기구가 만들어진다면, 서로 트집만 잡다가 기구 자체가 유명무실해지고 결국 100일이 지나도 이번과 똑같은 파행을 겪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여야는 이 문제를 두고 새로운 협상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거듭 말하지만 논의기구 구성에 있어서는 민주당이 양보하고, 그 성격과 역할에 있어서는 한나라당이 양보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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