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이 필요한 때다

홍문종 경민대학 총장

김유진

| 2009-06-03 14:58:00

베르사이유 궁전에는 왕의 개인용도 외에는 화장실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왕은 남몰래 비밀 화장실을, 무도회에 참석한 여인들은 멋진 치마 속에 숨겨놓은 배설처를, 귀족들은 건물의 구석 벽이나 바닥 또는 정원의 풀숲이나 나무 밑 등 닥치는 대로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바람에 화려한 무도회가 끝난 다음날이면 여기 저기 진동하는 악취 때문에 모두가 몸살을 앓아야 할 정도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게란트의 저술 화장실문화사(Les Lieux. Historie des Commdites)에 나와 있는 역사적 사실들이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밤마다 열린 화려한 무도회 참석 차 궁전을 출입했던 수많은 귀족들이 그들의 배설물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상상하면 그저 아찔하다.

심지어 루이 14세가 그때까지 살던 파리의 루불 궁전을 버리고 베르사이유 궁전으로 옮긴 이유도 오물로 뒤덮인 주변을 피해서였다는 소문까지 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만리장성은 장장 2,700km라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토목공사 결과물로 오늘 날 수많은 인파를 불러모으는 관광자원이 되어 효자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지만 그 내막을 따지고 보면 아이러니하다.

만리장성이 완성되기까지 세계 역사상 유래없는 처참한 노동착취가 이뤄짐에 따라 한맺힌 희생의 현장이 되어버린 곳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만리장성을 축조하는 동안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징발됐고 그곳에서 평생을 갇힌 채 노동을 강요당했으며 공사 중 사망한 사람은 시체를 치울 장소나 비용이 없어서 공사현장에 그대로 묻고 그 위에 계속 성을 쌓아올리는 반인륜적인 일들이 예사로 자행됐다고 한다.

모든 성과물 뒤에는 희생이 있기 마련이고 그 희생의 크기가 클수록 결과물은 더 튼실했다.

잔혹한 인간사의 한 단면으로 치부하고 말기엔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베르사이유 궁전과 만리장성에 환호하던 이들이 그 대상의 실체적 진실을 직면하게 됐을 때에도 여전히 탄성을 지르며 감탄할 수 있을까.

호사스러움 잠식하는 배설물의 음습한 악취가 지배하는 이면을 맞닥뜨리고도, 혼을 빼앗을 만큼의 장엄한 규모와 장관을 위해 수없이 많은 인명의 희생과 고통이 함께 매장됐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여전히 그 외관의 경이로움에 탄복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는 게 정답일 것이다. 최소한 기본적 인성에 기초하는 한 타인의 불행을 짓밟고 자신의 행복을 세우는 건 부당하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보여주고 싶은 곳과 감추고 싶은 두 개의 상반된 내면이 공존하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마치 동전의 양면같은 두 개념이 어떤 형태로 컨트롤 되는가에 달려있다는 점이다.

적절한 조절과 합의로 황금률의 균등함을 유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의 자존이 성립될 수 있다.

진실은, 스스로는 물론 타인에게도 평화와 존엄을 누리게 해 주지만 거짓은 갈등과 모멸을 부를 뿐이라는 사실은 만고의 진리다. 한 사람에게 진실인 것은 인류 전체에도 진실로 통할 수 있고 단 한 사람을 속이는 거짓은 국제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똑같은 무게의 거짓으로 존재한다.

국제사회에서의 미국이 갖는 위상만 해도 그렇다.

과거에 비해 세계 최강의 패권국으로서 미국이 누리는 지위는 상당히 허약해졌다. 몇 몇 실책으로 인해 국제사회가 더 이상 미국을 우호적으로 바라보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구촌 사회에서의 미국은 관대하고 정의로움에 빛나는,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원조의 손길을 기대할 수 있는 무조건적인 아군의 개념으로 비춰졌던 데 비하면 상당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진정한 패권국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국민의 자존 보다는 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기준으로 공정하게 행동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 결과 그동안 미국이 쌓아올린 신뢰도가 뿌리 채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추락은 시간문제다. 더 이상 국제사회를 견인할 수 없을 만큼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명되는 즉시 나락으로의 급추락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미국이 덕을 잃고 신뢰를 잃는다면 미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커다란 불행에 빠지게 되는 결과에 봉착하게 된다.

그럼에도 역사는 냉혹하게 그 과정을 진행하게 될 것이다.

노무현 서거, 삼성판결, 북핵, 한-아세안 정상회담...

세상이 숨 막히게 돌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급하다고 바늘을 허리에 매어 쓸 수는 없는 일이다.

아무리 다급해도 최소한의 진정성을 담아야 한다.

보여주고 싶은 것과 감추고 싶은 것에 대한 적절한 배율에 대한 합의없이 마구잡이로 진행된다면 화장실 없는 베르사이유 궁전의 낭패를 겪게 될 수도 있다.

인본말살의 행적을 묻은 만리장성의 부끄러운 역사를 후회하게 될지 모른다. 자칫 공감 대신 공분을 자극하게 되면 (미국처럼)1등 국가의 권력을 하루아침에 몰수당하게 될 수도 있다.

정보의 홍수로 대변되는 21세기다.

세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정보와 지침서가 넘치는 환경에서 과거의 오류를 반복한다면 역사에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남기는 일이 될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 후대로부터 어떤 식의 평가를 받게 될 지 염두에 두어야 하는 이유다.

통합과 화해를 바탕으로 국가 발전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진지하고 성실한 접근방식이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오늘 밤 ‘늦었다고 생각하는 때가 가장 빠른 전진의 시기’와 ‘진실만큼 큰 무기는 없다’는 두 가르침을 깊이 고민해봐야겠다.

진정성이 전제돼야 하는 건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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